<물질 그 이상을 추구하라>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혹은 "저는 그저 소시민입니다"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듯이, 그런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자기 삶을 평범한 인생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삶을 이렇게 정의한다면 미래도 그 수준에 머물고 말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이왕 한다면 최고가 되기로 결심하라.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 뭐든지 적당하게 하고 말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일에 대한 흥미는 급속도로 떨어지고 결과는 별 볼일 없어질 것이다. 인간이란 본래 놀이하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 우리가 게임이나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런 활동들이 놀이를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는 묘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놀이하는 본성을 최고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의 일생이나 일년 혹은 일일 목표 속에 의도적으로 위대함이나 완벽함 혹은 최고를 담는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은 끊임없이 최고를 향한 게임에 자신을 던지게 된다. 이렇게 생활하면 일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게임 혹은 경기로 바뀔 것이다. 이런 경지까지 자신을 끌어올리면 물질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풍족한 물질이 주어질 것이며, 명성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대단한 명성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당신의 가슴과 두뇌 속에 위대함을 향한 열정을 품으라. '이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고 말 거야'라는 각오를 다지라.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부추기는 힘은 바로 위대함을 향한 열정이다.
나는 '나라는 존재는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 한계를 실험해 보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낄 때까 많다. 그래서 하루, 일 주일, 한 달, 일 년을 더 나은 목표를 향한 게임을 하는 제한된 시간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시간을 정해 놓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경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내가 가진 다양한 창조적인 에너지를 한껏 분출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에너지를 더 많이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게 되고, 그 결과 자긍심이나 자신감을 차곡차곡 쌓아 가게 된다. 이런 삶은 타인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사회를 도울 수 있는 방법 중 한다.
젊은 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추구하는 수준 정도에 자신을 위치시키지 말라. 사회적인 동조 압력에 굴복하지 말라. 조선일보의 강인선 기자는 『블링크(Blink)』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각 사회마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처럼 어떤 사회 현상이 전염병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속도가 다르겠지요? 한국은 미국에 비하면 남의 눈을 더 많이 의식하는 사회거든요. '남들이 볼까 무섭다' 이런 식의 표현을 많이 쓰지요." 말콤 글래드웰은 여기에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사람들이 서로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사회라면 전염이 더 신속하게 일어나겠지요.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지요? 역사상 오늘날의 한국처럼 사람들이 서로 더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던 사회는 아마 없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유행이나 아이디어의 전염성이 대단히 강력한 사회지요.
사회적 맥락과 문화의 차이는 중요합니다. 타인이 무엇을 하고 생각하는지에 더 신경을 쓰는 사회가 전염성이 강해요. 반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다른 사람 말을 잘 듣지 않고 타인의 영향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니까 변화가 느리지요.
강인선, '누구나 궁금해하는 것을 쉽게 풀어쓴 게 성공비결'
『조선일보』, 2005. 12. 9.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거나 남이 가지 않을 길을 걸어갈 때, 주위 사람들에게 격려나 칭찬을 받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다. 오히려 남다른 길을 택한 사람에게 선의든 악의든 간에 평균으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요청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웬만큼 자기 주장이 강하고 줏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만의 목표를 뚜렷이 세우고 나가기 어렵다.
원대한 목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불경스럽거나 황당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럴 때는 자신의 선택을 당차게 고수할 수 있어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자서전에서 열네 살 생일을 맞기 전에 그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기념비적인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1923년 11월 11일, 오스트리아의 공화국의 날,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제가 퇴위를 하고 공화정이 선포된 것을 기념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드러커는 행진을 하다 말고 대열을 이탈해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심한 고독감을 느끼고서는 다시 그들과 합류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우쭐한 기분을 느꼈다" 고 회고한다. 이 의미는 무엇일까? 드러커의 부모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집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어디가 좋지 않니?" 라고 묻는다. 드러커는 자신이 평생 어떻게 살 것인지 암시하는 말을 한다.
"최고로 기분 좋아요, 단지 제가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에요." 그 차갑고 떠들썩한 11월의 어느 날, 나는 내가 구경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피터 드러커, 『피터 드러커 자서전(Adventure of a Bystander)』, p.27
이 메시지는 인간은 타인의 의견에 좌우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의견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물론 이런 특성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지만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사회에서 스스로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젊은 날 자신의 에너지를 퍼붓는 일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며, 긴 인생에서 두고두고 풍족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귀중한 선택이다.
피터 드러커의 지적처럼 때때로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관한 한 구경꾼이 되라. 그러면 사물이나 현상을 다른 각도로 보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젊은 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당연히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공병호, 『10년 법칙』 p.169 - 173
'비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레퍼토리의 비약 (0) | 2011.03.01 |
---|---|
루디야드 키플링 - 만일 (0) | 2011.01.10 |
의지 (0) | 2010.06.18 |
<여행> (0) | 2010.06.18 |
<초대> (0) | 2010.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