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버림과 키움」 아버님께 5월 25일부 서한 잘 받았습니다. 귀로에 온양을 들러 현충사 경내를 돌아보셨다는 글월을 읽고 저도 동승한 듯 기뻤습니다. 6월,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제게는 또 피서(避書)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쯤 마침 밀린 일도 끝나고 지킬 약속도 없는, 담배 한 개피 .. 신영복 2011.09.07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겨울 새벽의 기상 나팔」 계수님께 기상 30분 전이 되면 나는 옆에서 곤히 잠든 친구를 깨워줍니다. 부드러운 손찌검으로 조용히 깨워줍니다. 그는 새벽마다 기상 나팔을 불러 나가는 교도소의 나팔수입니다. 옷, 양말, 모자 등을 챙겨서 갖춘 다음 한 손에는 '마우스피스'를 감싸쥐어 손바닥의 온기로 데우며 다른 손에는 나팔.. 신영복 2010.05.27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형수님께 몇 장의 깨끗하게 쓰지 못한 공책장을 찢어내면, 그만큼의 새 공책장도 따라 떨어져 나갑니다. 결벽증이 심하고, 많은 것을 원하던 학생 시절에는 노트의 첫 장이 조금이라도 더렵혀지면 이내 뜯어내고 새로 시작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지간히 세월도 흐르고 세상의 너른 속을 .. 신영복 2010.05.2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바다에서 파도를 만나듯」 아버님께 5월 11일부 하서 진작 받고도 이제서야 필을 들었습니다. 그간 어머님께서도 강녕하시고 가내 두루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이곳의 저희들도 몸 성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왔던 더위도 윤사월을 비켜 잠시 뒤물림을 했는지 조석으로 접하는 바람에는 상금도 초봄의 다사로.. 신영복 2010.05.21
어제와 오늘 어제가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오늘도 불행하고,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내일도 불행합니다.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밤'이 있습니다. 이 밤의 역사는 불행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입니다. .. 신영복 2010.04.11
첩경과 행운 첩경捷徑과 행운에 연연해하지 않고 역경에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旣存과 권부權富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탄회한,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우직함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합니다. 신영복 2010.04.01
그릇을 깨트리고 성공은 그릇이 가득 차는 것이고, 실패는 그릇을 쏟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성공은 가득히 넘치는 물을 즐기는 도취임에 반하여, 실패는 빈 그릇 그 자체에 대한 냉정한 성찰입니다. 저는 비록 그릇을 깨트린 축에 속합니다만, 성공에 의해서는 대개 그 지위가 커지고, 실패.. 신영복 2010.04.01
진선진미 盡善盡美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 盡善盡美라 합니다. 목표가 바르지 않고 그 과정이 바를 수가 없으며, 반대로 그 과정이 바르지 않고 그 목표가 바르지 못합니다. 목표와 과정은 하나입니다. 신영복 2010.04.01
교巧와 고固 갈수록 글씨가 어려워져 쉽게 붓을 잡지 못합니다. 답보에 대한 불만과 변화에 대한 충동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무리하게 변화를 시도하면 자칫 교巧로 흘러 아류亞流가 되기 쉽고, 반대로 방만放漫한 반복은 자칫 고固가 되어 답보하기 때문입니다. 교巧는 그 속에 인생이 담기지 않은 껍데기이며.. 신영복 2010.04.01
통 通 통 通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주역 사상의 핵심입니다. 궁극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리게 되며, 열려 있으면 오래 간다는 뜻입니다. 양적 축적은 결국 질적 변화를 가져오며, 질적 변화가 막힌 상황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열려 있을 때만이 그 생명이 지속됩니다. 부단한 혁.. 신영복 201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