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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셋> 링클레이터 감독론 - 그를 이해하는 7개 키워드 [1]
어느 선댄스 키드의 아름다운 성장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세계를 이해하는 7가지 키워드
<비포 선셋>을 만든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선댄스 세대 중 독립정신을 유지하면서도 대중과 호흡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생존자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빠르게 주류의 흐름에 몸을 맡겼고 그렉 아라키와 톰 디칠로, 존 조스트는 수면 아래로 잠겼다. 하지만 링클레이터는 1991년 <슬래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후 <비포 선라이즈> <웨이킹 라이프> <테이프>, 그리고 <비포 선셋>까지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꾸려왔으며, <라스트 스쿨> <서버비아> <스쿨 오브 락> 같은 개성있는 스튜디오 영화를 만들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어떻게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영화세계를 지켜왔나. /편집자
<비포 선셋>이 뿜는 광채는 값비싼 다이아몬드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자잘한 모조 큐빅들이 햇살에 비쳐 무지갯빛을 내듯, <비포 선셋>은 하찮고, 시시하고, 일상적인 재료를 통해 영원히 지속되는 찰나의 감정이라는 로맨틱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다큐멘터리처럼 시종 두 사람의 대화만을 뒤쫓는 이 영화는, 하지만 퍽퍽하긴커녕 그 어떤 스펙터클보다 흥미로운 관계의 우주를 탐험하게 해준다. 마지막 순간, 암전이 찾아올 때 관객이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뱉는 것은 이 80분간의 마술 같은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비포 선셋>을 보면서 심금의 멜로디를 들었다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멍한 느낌이었다면, 극장을 나가 미친 듯 사랑을 찾아 헤매고 싶었다면, 링클레이터의 의도는 적중한 것이다. 좀더 현실적이고, 좀더 일상적이며, 좀더 진실하고, 좀더 한가로우며, 좀더 지적인 영화에 대한 추구말이다. 슈퍼 8mm로 만든 영화 <독서로 경작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1988)를 포함,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10번째 장편영화 <비포 선셋>은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수다라고 표현해야 할 끊임없는 대화, 쉼없이 어딘가로 향하는 여정, 현실과 근거리에 있는 백일몽, 현실의 시간과 매우 가까운 영화적 시간, 지독히 일상적인 리얼리티, 유럽영화에 대한 동경 등이 그것. 이들은 1991년작 <슬래커>에서부터 일관되게 드러났던 링클레이터의 영화적 ‘밑천’이기도 하다.
1. 수다 수다 수다… “대화는 플롯이다”
셀린느: 왜 내겐 청혼 안 해? 거절했겠지만! 하긴 다 내 탓이지. 인연을 느낀 남자도 없었어! 인연이란 게 뭐야? 그런 게 어딨어? 짝을 못 만나면 반쪽짜리 삶이야?제시: 말 좀 하자.링클레이터의 영화는 시끄럽다. “아빠, 다음 영화도 그저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관한 거야?”라고 딸이 물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그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쉴틈없이 무언가를 주절거린다. 이런 면모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사는 게으름뱅이들의 이야기 <슬래커>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100명에 가까운 캐릭터가 등장,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끊임없이 포커스가 옮겨가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오로지 대화다. 오스틴시의 자그마한 동네를 배경으로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묘사한 이 영화엔 특별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하릴없는 사람들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생존설 같은 터무니없는 음모이론이나 정치에 관한 탁상공론 등 하찮은 이야기만 떠들어댄다. <비포 선라이즈> 또한 별 사건없이 제시와 셀린느가 나누는 신변잡기와 가벼운 철학적 농담만을 보여준다. 이 ‘말잔치’의 집대성은 <웨이킹 라이프>다. 깨어나도 깨어지지 않는 꿈속에서 주인공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철학적이며 사색적인 이야기들을 듣는다. 사르트르, 티모시 리어리, 키에르케고르, 베네딕트 앤더슨, 필립 K. 딕 등 다양한 인물이 거론되고 실존주의, 진화론, 자유의지, 정체성 등의 주제가 논의된다.
“링클레이터의 영화에서… 대화는 플롯으로 기능한다”는 한 평론가의 지적처럼 링클레이터의 영화가 이토록 수다로 점철돼 있는 것은 “내 캐릭터 중 상당수는 자의식이 강하고 말이 많다”는 그의 취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영화 속에 되도록 많은 생각과 개념을 집어넣고자 하는 그의 영화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2. 꿈의 찬양… “세상의 슬래커들이여, 몽상하라!"
제시: 난 늘 꿈을 꿔셀린느: 어떤 꿈?
제시: 난 플랫폼에 서 있고, 자기는 기차를 타고 내 곁을 스쳐가. 스쳐가고 스쳐가고 또 스쳐가지. 그 꿈에서 깨면 또 다른 꿈을 꿔.
링클레이터 영화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꿈이다. <슬래커>는 택시를 탄 남자(링클레이터 본인이 연기)가 기사에게 자신이 톨스토이와 점심을 먹거나 프랭크 자파의 로드 매니저가 되는 꿈을 꾼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비포 선라이즈>에선 거리 시인의 백일몽에 대한 찬양이 보여지고, “꿈은 운명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웨이킹 라이프>는 그 자체가 꿈에 관한 이야기다. <독서로…>는 “인생은 긴 꿈의 사슬이다”라고 말하는 칼 드레이어 감독의 <게르트루드> 속 한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링클레이터 영화 속의 꿈은 백일몽이다. “백일몽은 별로 생산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건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 곳이다. 이 백일몽 상태에서 당신은 살고픈 이상적인 삶과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백일몽을 꿀 수 있는 이는 당연히 게으른 자, 바로 슬래커(slacker)다. 링클레이터에게 슬래커는 그저 게으름뱅이가 아니다. 슬래커는 사회적 시스템에 부속품처럼 편입되어 있지 않은 가운데, 다양한 사고와 상상과 사색을 하는 자들이다. 발표와 동시에 ‘슬래커 신드롬’을 일으켰던 동명의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대부분 영화의 주인공은 슬래커였다.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와 셀린느가 그랬고, <서버비아>와 <웨이킹 라이프>의 인물들이 그랬으며, <뉴튼 보이즈>의 은행털이 형제들이나 <스쿨 오브 락>의 듀이 또한 마찬가지다.
슬래커는 멈추지 않는다. 방구석에서 뒹굴기만 한다면, 그건 슬래커가 아니다. <독서로…>의 절반 정도는 주인공이 기차 속에 있는 장면이고, <슬래커>와 <비포 선라이즈> <웨이킹 라이프>의 첫 장면은 기차에서 시작된다. <뉴튼 보이즈>의 형제는 은행을 찾아 텍사스주를 헤매며,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의 제시와 셀린느는 한시도 쉬지 않고 비엔나와 파리를 돌아다닌다. 결국 슬래커의 운명은 끝없는 여정 속에서 백일몽을 꾸는 것이다. 슬래커의 대변인 링클레이터는 이렇게 얘기한다. “일은 당신의 건강에 해롭다! 네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라! 몽상하라!”
3. 실시간 기법… “영화는 삶의 일부다”
제시: 결국 다 자전적이죠. 우린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까요… 제가 살아온 삶은 평범했어요. 총이나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죠. 정치 음모나 헬기 사고도요. 하나 모든 삶은 드라마입니다.늘 몽상하지만 링클레이터의 영화는 판타지로 빠지지 않는다. 꿈속의 세계를 그리는 <웨이킹 라이프>조차 그 바탕은 판판한 현실이다. 그것도 지극히 일상적인. “영화는 삶의 일부여야 한다.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네 영화를 살아라.” 영화의 소재와 이야기를 스스로의 경험에서 도출해내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 속 리얼리티를 뽑아내기 위한 나름의 방법론인 셈이다. <슬래커>는 자신이 사는 텍사스주 오스틴의 이야기이고, <라스트 스쿨>은 학창 시절에 대한 회고이며, <비포 선라이즈>는 필라델피아에서 우연히 만나 한밤 내내 함께 쏘다녔던 여성에 대한 추억을 갖고 만든 작품이다. 일상성과 현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링클레이터의 또 다른 방법론은 현실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을 최대한 일치시키는 것이다. 97분 동안에 현실의 24시간을 담은 <슬래커>, 103분 안에 18시간 정도를 담은 <라스트 스쿨>, 14시간을 105분에 담은 <비포 선라이즈>, 그리고 실시간을 러닝타임에 그대로 옮긴 <테이프>와 <비포 선셋> 등은 “나는 언제나 진짜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에 매료되왔다. 큰 드라마가 아니라 길을 걷거나 차에 타는 것처럼 그저 우리가 하는 행동들 말이다”라는 링클레이터의 영화관을 반영한다.
4. 등장인물은 B급… 본인은 A급의 “아트영화 건달”
제시: 미국엔 왜 이런 카페가 없을까?시답지 않은 농담이나 따먹으려고 오스틴 변두리를 쏘다니는 슬래커들처럼 그의 영화에는 주로 B급 인생들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 취향마저 B급은 아니다. 그는 영화감독인 동시에 시네마테크인 ‘오스틴 필름 소사이어티’의 공동 창립자이다. 예술영화 애호가인 그는 현재까지도 이곳의 아트디렉터로 일하면서 자신의 영웅 파스빈더, 오즈, 브레송, 브뉘엘 등의 영화를 소개해왔다. 같은 맥락에서, 장르에 무관심하고 지적인 수다에 집중하는 그의 영화는 주로 미국영화보다 유럽영화에 비교돼왔다. 영화평론가 존 피어슨은 <스파이크, 마이크, 슬래커즈&다이크스>에서 “간단히 말해, 그는 독학한 최고 수준의 아트영화 건달이다”라고 평가한다. “<웨이킹 라이프>는 철학적인 대화가 전면에 나서고 대화가 액션을 대체하는 <모드 집에서 하룻밤> 같은 에릭 로메르 영화의 자취를 갖고 있다”는 영화평론가 브라이언 프라이스는 <슬래커>는 브레송의 <돈>에 비교했고,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자크 타티의 세계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링클레이터 또한 로메르와의 비교에 대해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분석적인 인물묘사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데, 전혀 언짢지 않은 지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5. 무정부주의자… “누구나 반항을 원한다”
셀린느: 정치로는 아무것도 해결 안 되겠기에 딴 일을 해보기로 했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사회에 포섭돼 있지 않은 탓에 슬래커들은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띤다. <슬래커>에서 매킨리 대통령을 암살한 폴란드 아나키스트를 소개하는 등 우회적으로만 보였던 이 성향은 <라스트 스쿨>과 <서버비아>에서 아이들의 기성사회에 대한 공격적 성향으로 드러난다. “내게 반항은 아주 자연스럽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늘 ‘왜요?’라는 질문을 던져 문제아로 찍혔다”는 회고처럼, 무정부주의는 그 자신에게서 기인하기도 한다. 그러한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화는 <뉴튼 보이즈>다. “나는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주도한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는 언제나 사회와 맞붙으려 하는 캐릭터를 다뤄왔다… 은행강도를 미화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주인공 월리스의 시각에 동의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은행은 최고의 사기꾼이다.” 그에게 저항 또는 반항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스쿨 오브 락>에서 듀이가 “록은 저항이다”라고 이야기할 때, 그건 자신의 이기심을 숨기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록이 자신이 원하는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즉 창조의 기쁨을 깨닫는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저항을 결행한다. “나는 모든 사람은 반항하고 창조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그걸 막을 수 없다.”
6. 고집스런 개성… “할리우드는 영화제작 정신을 말살”
셀린느: 83년 일기를 얼마 전에 읽었는데, 그때 고민거리가 지금과 똑같더군. 그땐 더 순수했지만 사물을 보는 시각은 지금과 똑같애. 난 통 안 변하나 봐.제시: 누구나 그래. 사람은 각자 어떤 성향이 있어. 세월이 흘러도 그건 변치 않지.“할리우드는 영화제작의 정신을 말살한다”고 링클레이터는 틈틈이 말해왔다. 그가 이런 말을 꺼낸 게 독립 프로젝트를 만들 때가 아니라,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제작할 당시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로 보인다. <슬래커>에 대한 폭발적 반응 이후, 그는 할리우드의 그래머시 픽처스로부터 부름을 받아 <라스트 스쿨>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머시와 배급사인 유니버설은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마약만을 마케팅 차원에서 부각시켰을 뿐 영화의 핵심은 알리지 않았다. <비포 선라이즈> 또한 캐슬록의 우산 아래서 만들어졌지만, 지원은 형편없었다. 그를 진짜 분노하게 만든 것은 <뉴튼 보이즈>였다. 1920년대의 은행강도 형제를 그린 이 영화를 놓고 폭스는 미국 배급에 적극적이지 않았을 뿐더러 해외 판매는 거의 시도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화를 내팽개치는 스튜디오들과 결별한 링클레이터는 이후 <웨이킹 라이프>와 <테이프>를 자신의 힘으로 꾸려냈다. 이후 파라마운트와 함께한 <스쿨 오브 락>으로 8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지만, <비포 선셋>의 예산 1천만달러를 끌어모으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비록 그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거래를 해왔지만 자신의 개성만큼은 잃지 않아왔으며,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2만3천달러짜리 <슬래커>의 고난을 다시 수행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가는 몇 안 되는 존재다.
7. 기본은 계몽주의자… “거대한 소통을 희망하라”
셀린느: 자긴 전갈자리, 난 궁수자리. 우린 찰떡이야.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어. ‘마법이나 신비를 믿지 않으면 죽은 거나 같다’고.1991년의 생일, 뉴욕의 안젤리카 시어터에서 <슬래커>를 보고 나온 케빈 스미스는 이렇게 외쳤다. “와우, 이것 갖고도 영화가 된단 말야? 제기랄, 이 빌어먹을 감독은 오스틴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나는 여기서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그렇담 왜 난 뉴저지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지? 나도 이걸 할 수 있어!” 스미스에서 <미국의 광채>의 샤리 스프링거 버만과 로버트 풀치니까지 그의 영화는 여러 동세대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쳐왔다.
그건 지나치게 지적인 영화를 만든다거나, 프티부르주아적 세계관을 설파한다는 비난도 받아왔지만, 기본적으로 계몽주의자인 링클레이터가 자신의 영화를 통해 전하려 했던 ‘메시지’가 통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영화 속 캐릭터들이 아무리 냉소적인 척하거나 ‘쿨’하게 보이려 해도 그들은 무언가를 위해 행동한다. 그것은 바로 소통이다. “스토리텔링은 소통이다. 우리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소통 말이다… 영화는 소통하는 데 있어서 가장 놀라운 수단이다. 우리는 여전히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씨름하고 있다. 어떤 자리건 당신이 영화라는 매체에 종사하고 있다면 좀더 거대한 소통을 희망하라.”
문석 mayday@cine21.com
링클레이터의 연기론
배우는 캐릭터만이 아닌, 영화 전체의 주인“작업 과정은 성취보다 중요하고, 질문은 답보다 값지며, 시도는 성공보다 존중돼야 한다”로 요약되는 링클레이터의 영화론은 일상적인 리얼리티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이어진다. 이는 연기에 있어서도 일맥상통한다. 연극작업 당시 연기를 했던 탓에 배우의 역할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그는 배우를 캐릭터의 주인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주인으로 참여시킨다. 그는 <슬래커> 때부터 시나리오에서는 대사를 대충 쓰는 대신, 집요한 리허설을 통해 배우의 입으로 대사를 완성해왔다. 에단 호크는 “내가 <비포 선라이즈>에 나오게 된 것은 릭(링클레이터)이 시나리오를 즉흥적으로 바꾸기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링클레이터로부터 “어떻게 이 여자(셀린느)를 기차에서 내리게 할래?”라는 질문을 받았다. 호크는 자신의 의견을 설명했고, 줄리 델피는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런 적극적인 토론을 통해 나온 결론은 시나리오를 풍부하게 보충했다. <라스트 스쿨>을 준비하던 당시, 벤 애플릭은 잠시 망설였다. 자신이 맡은 배역인 오배니언은 신입생들을 마구 패대는 악역이기 때문. 그때 그는 시나리오에 붙어있는 ‘이 영화가 시나리오에 적힌 그대로 만들어진다면 엄청난 실패일 것이다. 여러분의 공헌을 간절히 원한다’는 메모를 봤고, 자신의 의견대로 시나리오를 고쳐 보냈다. 이는 영화에 그대로 반영됐고 애플릭에게 “나도 이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줬다”. <슬래커> 당시 실제 인물의 캐릭터를 그대로 영화에 반영했거나, <테이프>를 찍을 때 아주 긴 리허설을 통해 구체적인 대사를 썼으며, <비포 선셋>을 위해 델피, 호크와 전화, 팩스, 이메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간 것도 모두 같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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