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eduhow.tistory.com/entry/유학이라는-선택-대학원-유학의-기회비용-유학에-적합한-사람
한국에서 유학을 꿈꿀 때가 생각납니다. 3년간의 회사생활에 조금 싫증이 나고, 개인의 정보와 지식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이를 다루는 연구 분야가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흥분하였습니다. 관련 학과의 프로젝트 홈페이지를 들어다보며 제가 만들었던 시스템과 비교하기도 하고, 저도 언젠가는 그런 연구를 직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의 제게 유학은 '현실'이라기보다는 '환상'에 가까웠습니다.
실제로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께서 '답답한 현실을 탈출하는' 환상으로서 유학을 그리고 계시지 않을까요? 유학 생활 3년 하고도 반, 이제 어느정도 초기의 흥분은 가시고 새로운 환경에도 어느정도 적응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좀더 차분하게 '유학'이라는 선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환상'이 아닌 '현실'로서의 유학에 대해 써 보고 싶습니다.
유학의 기회비용
모든 종류의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든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감당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학이라는 꿈을 꾸기에 앞서, 그에 따라 치러야 하는 댓가를 생각해 봅시다. 각 항목에 있어서 유학의 장점과 기회비용을 나열해 보았습니다.
연구활동 vs. 생활 환경
Pros 유학의 장점으로 흔히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은 연구환경'입니다. 애매한 말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더 나은 교수진과 학생, 좀더 수평적이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 등을 일컫는 것 같습니다. 분야에 따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컨데, 저희 지도교수님은 정보검색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긴 Distinguished Professor (한국으로 석좌교수)시지만, 면담시에 First Name으로 서로 부르며 격의없이 대화하곤 합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Cons 하지만 생활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잃는 것이 많습니다. 유학생들끼리 흔히 하는 말로 '다시 갓난아이가 된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음식, 매너, 법률 및 규칙 등 모든 것을 다시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몇년이 지나도, 아니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적당히 해 주세요' 하면 되던 머리 손질이지만, 아직도 미국 헤어드레서에게 머리를 맡기는 것은 (한국보다 두배 이상의 비용을 치르고도) 식은땀나는 일입니다.
해외 Career vs. 국내 Career
Pros 유학을 나오는 것이 해외 취업에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문화 및 언어 습득이 현지 취업의 전제조건이며, 현지 학위가 있으면 비교적 쉽게 비자를 스폰서해줄 기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현지에 전혀 체류경험이 없는 경우 취업 비자를 받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해외 취업의 관문으로 유학은 매우 권할만합니다.
Cons 하지만, 굳이 해외 취업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경우, 그 시간을 국내에서 훨씬 효율적으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유학 준비에는 최소 1년이 걸리고, 현지 적응에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국내에 있으면 익숙한 환경에서 '적응'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고, 여러가지로 훨씬 탄탄한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유학생들이 대부분 결혼이나 출산이 늦어지는 점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해외 Network vs. 국내 Network
Pros 유학을 온 경우, 대부분 학교 동료 및 유학생들, 혹은 주변 연구자들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이런 경험은 인간적인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Cons 하지만, 여러가지로 문화적 코드가 다른 외국사람들과 한국에서와 같은 정감있고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처럼 서울에만 있으면 거의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있는것도 아니기에, 인간관계는 제한되게 마련입니다. 아직 미혼인 경우 배우자를 찾는 것도 당연히 어렵습니다.
성장 가능성 vs. 수입과 안정감
Pros 유학을 통하여 전문가로서 성장에 필요한 발판을 닦을 수도 있습니다. 교수님의 지도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훈련, 그리고 컨퍼런스 등을 다니며 배우는 것들은 많은 경우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입니다. 또한 교수, 연구원 등어떤 종류의 직업에는 석박사 학위가 필수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지고 수명이 길어진 요즘, 유학을 통해 원하는 분야의 전문성을 쌓고, 평생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이는 분명 도전해볼만한 일입니다.
Cons 하지만, 학위를 마치고 제대로 자리를 잡기까지 상당히 긴 기간을 생활비 이상을 벌 수 없는 상태로 보내야 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학위 취득이 고액 연봉에 직결되지는 않기에 (석박사학위는 자격증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항상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학위 취득후에 그에 걸맞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 오히려 지나치게 긴 가방끈이 취업에 장애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력이 출중한 경우에는 불확실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박사학위를 필요로하는 수준의 Job Position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굉장히 제한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예컨데 교수 채용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결원 충원에 그칩니다.)
유학에 적합한 사람
위에서 언급한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고,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유학에 적합한 사람'일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요건은 '정말 하고 싶으며,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유학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일'을 찾았는지가 아닐까 합니다.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현재를 즐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생활의 어려움이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의 열정 없이는 낯설고 경쟁이 치열한 미국이라는 곳에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맨땅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유학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 유리합니다. 특히, 원하는 것을 분명히 요구해야 하며, 자신의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해나가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반면에, 한국 사회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답답함을 느꼈던 분이라면 미국에서 마음껏 자신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 사회의 경쟁이 치열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학계에서는) 비교적 실력 위주의 투명한 경쟁을 한다는 느낌입니다.
마치며
저의 경우 유학을 시작할 때, 1) 평생을 걸고 배우고 싶은 분야(정보 검색)가 있었고 2) 학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학능력과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으며 3)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행복이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3년 반이 지난 지금 유학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조건 중 한가지라도 부족했다면 이곳 생활을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한국 유학생의 44%가 drop-out한다는 기사를 읽어보면, 유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선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이 유학을 고민하는, 혹은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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