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 혁명』 - 유병선
여는 글 p.8-13
"보노보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유인원이다."
미국 에모리 대학의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 교수가 유인원과 인간의 행동을 비교 연구한 『내 안의 유인원(Our Inner Ape)』(2005)에서 한 말이다.
보노보(Bonobo)는 유전적으로 사람과 가장 가깝지만 가장 덜 알려진 유인원(꼬리 없는 원숭이)이다. 덩치만 갖고 따지면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다음에 오는, 다시 말해 유인원 네 식구 중 막내로 침팬지와 거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닮아서 '피그미 침팬지'로도 불린다. 동물학자들도 1950년대에 들어서야 별개의 종으로 구분했으니 보노보를 모른대도 큰 흉은 아니다. 또한 보노보는 실로 민망한 유인원이기도 하다. 시도 때도 없이 위아래도, 암수도 가리지 않고 섹스를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동물의 왕국>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찍던 촬영 기사가 시청자들에게 포르노를 보여 줄 수 없다며 카메라를 돌렸을까.
그런데 일급의 영장류 학자인 드 발은 이 민망한 보노보를 왜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유인원이라고 한 것일까. 드 발의 안내를 받아 가만히 보노보의 등 뒤에 서면 우선 사람이 달리 보인다. 사람의 본성이 침팬지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에서 비롯했다는 '상식'이 뒤집힌다. 사람과 침팬지를 비교한 많은 연구들은 탐욕이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본성이며, 이기심이 인간의 원동력이라고 '선동'해 왔다. 이는 사람의 또다른 친척인 보노보를 전혀 모르고 한 소리다. 보노보와 침팬지의 본성은 낮과 밤만큼이나 다르다.
침팬지는 우락부락하고 야심만만하며 폭력적인 반면, 보노보는 평등을 좋아하고 섹스를 즐기며 평화를 추구하는 낙천적인 천성을 지녔다. 침팬지가 '도살자 유인원'으로, 다시 말해 인간의 공격적 본성의 뿌리로 지목되었다면, 보노보는 인간의 또 다른 특성인 공감(共感) 능력을 대표한다. 침팬지가 우리에게 씌워진 악마의 얼굴이라면 보노보는 천사의 얼굴이다. 요컨대 '화성에서 온 침팬지, 금성에서 온 보노보'다. 그러니 침팬지의 눈으로 본다면 나보다 우리를 주먹보다 악수를, 경쟁보다 협력을, 다툼보다 나눔을 사랑하는 보노보가 답답하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의 유전자에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서로 다른 본성이 나란히 새겨져 있으며, 이들 양극단의 속성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긴밀하게 협력하기도 하면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간다. 폭력과 탐욕이 인간의 본성이고, 평화와 공감은 단지 포장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은 '철학이라는 이름의 신화'이자 '과학이라는 이름의 선동'일 뿐이다. 따라서 보노보의 존재는 신화 파괴이자 신선한 전복(顚覆)이라 할 만하다.
침팬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엔 온통 침팬지지들만 우글거리는 듯하다. 지난 30년, 세계화의 대로를 따라 흐른 것은 탐욕과 이기심이었다. 침팬지들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렸다. 돈 놓고 돈 먹기의 도박판과도 같은 '승자 독식의 경제', 80퍼센트를 가난하게 만들고 20퍼센트만 살찌우는 '80대 20의 사회', 부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금권의 정치'는 침팬지의 본성으로 모두 용서되는 듯했다. 세계는 넓고 개인의 탐욕은 끝이 없다고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침팬지 경제학'을 신주단지처럼 받들고, '침팬지 기업'과 '침팬지 정치', '침팬지 언론'이 공을 들인 '침팬지 세계화'는 난공불락인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드 발이 일러 준 우리 안의 또 다른 유인원 보노보는 어디에 있는가. 침팬지에게 모두 도살됐을까? 아니면 우리의 유전자에서 삭제됐을까? 이 책 『보노보 혁명』은 그 물음을 좇은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침팬지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지 않는 한 보노보는 있다. 그것도 아주 많다. 보노보의 렌즈는 거꾸로 된 세상의 상을 바로잡아 준다. 침팬지의 세상인 듯 보였던 지구촌 구석구석에는 조용히 사랑을 나누는 수많은 보노보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개인과 이기심만 있을 뿐'이라며 침팬지들이 내팽개치고 뭉개 버린 공감적 사회성을 착한 힘으로 되살리고 있다. 세상이 이만큼 굴러가는 것도 숱한 보노보들의 선행 덕이다.
조금 더 깊이 들여댜보면 침팬지가 할퀴어 놓은 사회의 생채기를 보듬는 데 그치지 않고, 도박판처럼 엉망진창인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 반란'에 나선 보노보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보노보 중에서도 개인적 선행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발로 뛰는 보노보들에 주목하고 있다. 이 새로운 보노보들은 침팬지 경제학의 돈독을 씻어 내고, 무한 경쟁으로 생겨난 사회적 빈틈을 메우며, 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활의 손길을 내민다. 또한 시장에 뛰어들어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고, 사회적 유익을 극대화한다. 요컨대 제 지갑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보노보 경제학'이며, 이를 통해 '침팬지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바꾸는 게 '보노보 혁명'이다. 보노보들은 이미 대오를 갖춰 행진을 시작했고, 새 길을 열고 있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사회적 기업가와 사회적 기업, 그리고 제 4섹터가 바로그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아시아 지역 판매를 총괄하던 존 우드는 돌연 침팬지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경영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아시아의 오지에 공짜로 도서관고 학교를 지어 주고, 돈이 없어 못 배우는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나눠 주는 보노보로 변신했다. 공중 보건을 공부한 데이비드 그린은 침팬지 의료 체계에 맞불을 놓았다. 그는 의료용품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싼값에 팔면서도 얼마든지 흑자를 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돈 앞에서 평등하지 않은 병원 문턱을 낮추기 위해 부자와 가난뱅이가 '필요 따라 의료 서비스를 받고, 능력에 따라 의료비를 지불하는' 차등 의료 시스템도 설계했다. 그들은 '배려 자본주의'를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보노보이다.
보노보들이 하는 일은 실로 다앙하고 자유롭고 진지하다. 데이비드 위시는 기타로 아이들을 화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얼 마틴 팰런은 가난의 대물림의 고리를 끊고자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공부방을 열었다. 사라 호로위츠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프리랜서들을 단결시키고, 엘리엇 브라운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작업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빈곤, 환경, 인권, 주택, 교육, 실업, 장애인 등 사회적 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남들이 사회의 빈틈을 걱정만 하거나 외면할 때 그들은 그곳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발품만 판 게 아니다. 정부나 시장, 기존의 시민단체와는 다른 혁신적이고 효율적이며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아냈다. 당장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제도와 세상을 바꾸려는 보노보, 그들이 바로 사회적 기업가들이다.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라는 개념을 창안한 사람은 빌 드레이튼으로, 아쇼카를 세우고 수천 명의 보노보를 발굴하고 지원해 온 보노보의 대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라민 은행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는 보노보의 맏형쯤 된다. 드레이튼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seph A. Schumpeter)가 자본주의의 특성을 '창조적 파괴'로 규정하면서 그 중심적 존재로 꼽았던 기업가 혹은 기업가 정신을 영리 기업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혁신에도 적용하자는 뜻에서 '사회적'과 '기업가'를 합성했다. 기업가 정신으로 사회의 난제에 대해 창조적 파괴를 시도하자는 뜻에서였다.
사회적 기업가는 영리와 비영리에 구애받지 않을 뿐 아니라 민간 기업과 시민단체의 우성인자들과 함께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스팁즈 잡스의 기업가적 혁신과 마더 테레사의 자선이 합쳐진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과 이를 지원하는 각종 공익 재단, 사회적 투자 펀드, 교육 기관 등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보노보의 세계가 바로 '사회적 생태계'이자 '제4섹터'이다. 사회적 기업가들이 보노보인 것은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그들은 세상을 도박판으로 만들고 있는 침팬지를 향해 하이킥을 날리지 않는다. 그들은 침팬지의 방식으로 침팬지의 힘에 맞서지 않는다. 대신 헝클어진 세상을 추스르고, 그 뒤에 해법을 보여 줌으로써 어수선한 사회는 지탱될 수 없고, 가지런한 세상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설득한다. 그들은 그렇게 침팬지 스스로 반성하게 만든다. 나아가 안 하겠다는 은행의 팔을 비틀기보다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시장 안에서 새로운 최적의 균형을 찾는다. 이처럼 그들은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늘 그 근본을 먼저 생각하며, 낙천적이고 실용주의적으로 행동한다.
보노보들은 변화된 세상에서 어제의 해법은 내일의 변혁에 맞지 않다며, 일방적인 전복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를 통해 '보노보식 혁명'을 실천한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가들의 반란은 부드럽지만 강하고, 반짝이지만 지속적이고, 치열하지만 평화롭고, 작지만 아름답다.
사회적 기업의 신 생태계, 제4섹터 p.241-243
2006년 12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세계자원연구소(WRI) 주최로 '지속 가능한 기업 회의(SES)'가 열렸다. 미국의 주요 대기업은 물론 각계의 인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구의 화두로 떠오른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본디 환경 문제에서 시작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3E, 즉 경제 성장(Economic Growth), 환경 보호(Environmental Protection), 사회적 형평(Social Equity)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1987년에 유엔 세계환경발전위원회는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스스로 충족할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는 발전"이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요컨대 지금의 경제, 환경, 사회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므로 이를 바로잡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쓴 칼럼니스트 칼 프랭클(Carl Frankel)도 이 회의에 참가했다. 회의 마지막 날, 그간 논의된 대안들을 발표하는 시간에 회의장 뒷자리에 앉아 있던 프랭클은 불쑥 일어나 큰 소리로 "이 방에 있는 우리 모두는 혁명가들이다." 라고 외쳤다. 일순 긴장과 침묵이 회의장을 메웠다. WRI 소장 조너선 래시(Jonathan Lash)는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변화의 대행자들"이라고 했다. 그는 프랭클이 말한 '혁명'을 '변화'로 순화한 것이다.
프랭클은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혁명을 입에 올리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지속 가능성이란 세계 경제를 전면적으로 전환하는 거대하고도 급진적인 변화이다. 이것이 혁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혁명이냐."라고 반문한다. 그는 체제 바깥의 폭력적인 힘에 의해 체제가 전복되는 것을 혁명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속 가능성을 잘못 이해했거나 부분적으로만 해석한 탓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지속 가능성이란 피의 냄새가 없는 21세기형 혁명이며, 어떻게 하면 폭력 없이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지가 오늘날 혁명가의 과제이다. 그 과제를 '변화'가 아니라 '혁명'으로 받아들이는 혁명가들이 행진에 나섰고, 혁명군도 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프랭클은 그 혁명군으로 '제4섹터(Fourth Sector)'를 꼽았다.
2007년 5월, 『뉴욕 타임스』는 "돈도 벌고 세상도 구하는 비즈니스"로 간결하게 정의하며 제4섹터의 부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를 허무는 사회적 기업뿐 아니라 공공성을 대폭 강화하는 형태의 영리 기업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잡종들을 제4섹터로 묶어 공론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유대계 미국 사회학자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i Etzioni)가 공적 관료계(제1섹터:정부, 공적 섹터), 민간 기업(제2섹터:시장, 사적 섹터)과 더불어 사회 구성의 주요 요소로서 시민사회(비영리 시민단체)를 제3섹터로 규정한 것이 1973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30년 남짓하여 제4섹터에 대한 논의가 대두된 것이다.
제3섹터론이 제1섹터와 시민사회의 새로운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면, 제4섹터론은 영리와 비영리로 확연하게 갈라섰던 제2섹터와 제3섹터의 관계에서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기존에 있던 3개 섹터의 역할과 기능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제4섹터론은 두 갈래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공공성의 재구성'이란 거대 전환의 사회 변동의 큰 틀에서 새로운 진화를 보다 정교하게 규정해 사회적 기업 등을 하나의 섹터로 분류하는 이론적인 작업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활발하게 창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기업은 물론 공공성을 대폭 강화하려는 민간 기업까지 네트워크로 묶어 새로운 진화를 촉진할 수 있는 '사회적 생태계(social ecosystem)'를 구축하려는 구체적인 논의이다.
목차
1장 아름다운 반란, 사회적 기업가
●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 '도서관 제국'으로 - 존 우드(John Wood)
●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희망 학원' - 얼 마틴 팰런(Earl Martin Phalen)
● 기타로 사회적 혁신을 연주하다 - 데이비드 위시(David Wish)
● 필요에 따라 치료 받고, 능력에 따라 낸다 - 데이비드 그린(David Green)
● 초모르에서는 장애인도 디스코를 춘다 - 에르지벳 세케레시(Erzebet Szekeres)
● 가난을 벗어나게 해 주는 값싼 기술 - 마틴 피셔(Martin Fisher)
● 전 세계 프린서여, 단결하라! - 사라 호로위츠(Sara Horowitz)
● 사람을 키워 혁신을 복제한다 - 빌 드레이튼(Bill Drayton)
2장 세상을 바꾸는 '보노보 기업'
● 가난한 사람들의 손으로 빈곤을 물리친다 - 그라민 은행(Grameen Bank)
●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투자형 자선 - 캘버트 재단(Calvert Foundation)
● 노동하는 빈곤층, 일자리의 질을 높인다 - 스프링보드 포워드(springboard Forward)
● 사회 공헌으로 빛나는 인생 이모작 - 시빅 벤처스(Civic Ventures)
● 돈도 벌고, 세상도 구하는 착한 기업 - B랩(B Lab)
● 공익 재단, 증권 시장에 뛰어들다 - 알트루세어 증권(Altrushare Securities)
● 사회적 빈틈을 메우는 정보기술 - 모바일 메트릭스, 위트니스, 키바, 마이크로플레이스
3장 세상의 난제에 도전하는 사회적 벤처
● 사회적 기업가는 누구인가
● 사회적 기업가의 조건
● 인적 네트워크의 힘
● 사회적 기업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
4장 사회적 기업의 신 생태계, 제4섹터
● 사회적 벤처 캐피털의 등장
●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대학들
● 떠오르는 제4섹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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