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노신에게서 발견하는 오늘의 우리
리 영희
중국 문학의 전공자가 아닌 내가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젊은 이욱연 군의 노신(魯迅)평론선집 번역본에 <추천의 글>이랄까, 나의 감상을 적게 된 것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기는 하지만 기쁜 일이다.
글의 순서를 무시하여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는 오늘을 사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 주기를 바란다. 노신의 이 한국어판 평론들을 특히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노신의 면모는 여러가지이다.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사평론가, 금석학 연구가, 서구문학 번역가, 서구사상 소개자, 목판화의 선구자, 교육자, 사상가, 현실개혁 실천가……등, 중국의 현대사에 남긴 그의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 많은 노신의 인간활동 중에서 내가 우리 사회에 다소나마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은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암울하고 어지러웠던 1910~30년대 중국사회에서의 사상가·평론가·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노신이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노신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만큼 널리 읽히고 알려진 듯 하다. 소설 아Q정전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Q정전이나 <광인일기> 등 그의 소설은 훗날 중국 민중이 낡은 유교사상의 속박과 지배자들의 압박을 뿌리치는 사상적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렇지만 노신의 진면목은 그의 평론에 있다. 사실 그의 대표적 소설로 꼽히는 그 두 작품도 엄격히 말하면 문학작품이라기보다는 <평론>이라고 할 수 있다. 노신 자신은 자기의 평론 문장들을 <잡감(雜感)>이라고 불렀었다. 그리고 그 <잡감>을 통해서 노신은 역사의 굴레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중국 민중을 건져낸 것이다.
내가 일찍이 우리 사회에 노신을 알리려 애쓴 까닭도 순수문학적보다 그같은 계몽적 효과 때문이었다. 노신의 평론(문장)은 그만큼 주제(主題)로써 광범위하고 내용과 형식에서 다양하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억눌린 민중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런 뜻에서 전통 러시아 사회에서의 톨스토이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독자로서 노신에게서 더 인간적 따스함을 느낀다. 당시의 암흑 속에서 광명을 찾아 헤매는 중국 민중에게 그토록 큰 감동을 준 것도 그들의 운명을 함께 괴로워한 노신의 삶 때문이었다.
이욱연 군이 노신의 많은 평론 문장 중에서 추리고 엮어 번역한 이 책에서 독자들은 그같은 정신과 삶을 살아간 노신을 만나게 되리라 생각한다.
노신은 중국 민중의 병폐를 가차없이 비평하였다. 그는 광명 속에 앉아서 암흑을 시비하는 것이 아니라 암흑 속에서 암흑을 대상화하였다. 값싼 동정으로 미래의 행복을 민중의 눈앞에 들여 보이는 대신 그는 억눌린 민중의 못남을 가혹하리만큼 들어내 보이면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울부짖고 몸부림쳤다. 그것은 중국 민중에 대한 가없는 사랑이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같은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노신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노신은 다음 세대에 희망을 걸었었다. 그와 동시에 청년을 죽이는 것도 청년이라는 사실을 그는 괴로워했다. 이 책 속에서 독자는 청년을 소재로 한 많은 글을 읽게 될 것이지만 그 뼈를 후비는 것 같은 신랄한 비평 속에 청년에 대한 그의 무한한 사랑을 아울러 느낄 것이다. 노신의 글에 담긴 미움 속의 사랑, 과거 이야기 속의 오늘의 현실, 웃으면서 우는 그의 마음과 글의 특징 및 기법, 즉 역설(逆說)의 힘을 느끼게 될 것이다.
노신은 극한 상황에 놓인 생명이 끝까지 간직하는 한 줄기의 <되살아 나려는 힘>(생명력)을 들어내 보임으로써 읽는 이의 혼을 불러 일으킨다. 그 자극으 바로 그 순간에서보다 차라리 두고 두고, 시간이 가면서 더 강하게 절실하게 마은 속에서 되살아 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내가 노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끌리게 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신이 바로 최근의 한국, 심지어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와 그 속의 인간으 그리고 있다는 착각을 느낄지 모른다. 어쩌면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끄러워질 것이다. 그리고 또 자신의 정신과 가슴 속이 노신에게 훤히 들여다 보여진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노신의 글이 주는 감동이다.
노신은 소설에서나 평론에서나 <과거의 일로써 오늘과 지금의 일을 설명하고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방법을 쓴 문학가이다. 우리는 70년 전의 일을 읽으면서 오늘처럼 느낀다. 그 시대의 중국 사회를 읽으면서 바로 오늘의 남한과 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욱연 군의 이 책이 많은 독자에게 그런 고귀한 경험을 나누어 주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러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9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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