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글 서두에 몇 편 안되는 큰스님 친필 청화작(淸華作) 게송하나를 감상하기로 한다.
아시본무형(我是本無形) :
‘나’도 바로 본래 모양이 없고
대경공비색(對境空非色) :
경계도 비어 물질이 아니거든
본래무사이(本來無事裏) :
본래 일없는 가운데
하필의방할(何必擬棒喝) :
하필이면 의심내고 탁자를 치고 고함을 지르는가.
청화(淸華)큰스님의 가장 큰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가 고려 중엽부터 현재까지 근 800년 동안 화두선 일변도의 한국 선법(禪法)을 석가모니 부처님부터 삽삼조사(三十三祖師)에 이르는 정통선법(正統禪法)인 염불선법(念佛禪法)을 다시 복원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하면 신라불교에서 고려중엽까지 면면히 내려온 원통불법(圓通佛法)을 다시 복원시키셨다고 볼 수 있다.
큰스님 열반에 드신지 6년이 되어가는 마당에 반갑게도 이제 한국불교계는 물론 특히 조계종에서도 염불선이 거부반응 없이 불 같이 일어나고 있다.
화두선을 창안한 대혜종고(大慧宗杲)스님도 당신 말년(末年)에 화두선의 성전(聖典)이며 당신 은사스님(圓悟克勤)의 노작(勞作)인 “벽암록(碧巖錄)”을 거두어서 소각할 정도로 간화선(看話禪)에 집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묵조선의 거장 굉지정각(宏智正覺)스님과의 교분으로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문자풀이는 하지 말고 화두만 의심하라” 이것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대혜종고스님도 화두선에도 병폐가 있음을 알고 계셨고 때문에 당신 말년에 가서는 화두만을 법집(法執)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큰스님의 “화두에 대하여”라는 친필을 정독할 필요가 있다.
화두(話頭)에 대(對)하여
화두(話頭)에 대(對)하여
1. 대혜선사(大慧禪師) 이전(以前)에는 별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지 않았으며, 대혜선사(大慧禪師) 또한 말기(末期)에는 화두(話頭) 참구(參究)의 성전(聖典)인 벽암록(碧巖錄)을 모조리 소각(銷却)할 정도(程度)로 화두(話頭)에 집착(執着)하지 않았다.
2. 초의선사(草衣禪師), 추사(秋史) 등(等) 화두선(話頭禪)이 정통선(正統禪)이 아님을 역사적(歷史的) 고찰(考察)을 들어 백파(白坡) 등(等)을 논박(論駁).
3. 지상개념(至上槪念)인 불(佛)과 상대유한(相對有限)한 개념차이(槪念差異).
4.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間) 절대(絶對)를 여의지 않는 생활(生活)을 할 수 없음.
5. 보편적(普遍的)인 수행(修行) 궁극적(窮極的)인 수행방법(修行方法)이 될 수 없음.
6. 확신(確信)이 아닌 의단(疑團)은 정신분열(精神分裂)을 면(免)할 수 없음.
7. 종교일반(宗敎一般)이란 안심입명(安心立命)이 그‘모토’인데 의정(疑情)을 떠나지 못한 행법(行法)은 불안의식(不安意識)을 불면(不免).
8. 종교(宗敎)란 그 종조(宗祖)와 선성(先聖)들에 대(對)한 신뢰(信賴)를 위주(爲主)로 하기 때문에 귀납적(歸納的)이 아니고 연역적(演繹的)이지 않을 수 없음.
9. 상대(相對)와 절대(絶對), 불변(不變)과 수연(隨緣), 체(體)와 용(用), 성(性)과 상(相)의 이(理)를 요해(了解)하면 새삼 의단(疑團)이 일어날 수가 없음.
10. 정사유(正思惟) ((본래시불(本來是佛) 무루지성(無漏智性) 본자구족(本自具足)등(等)) 아닌 체(體)를 여의고 어느 상대적(相對的) 개념(槪念)을 의심(疑心)하는 행법(行法)은 제일의선(第一義禪) 곧 조사선(祖師禪)((최상승선(最上乘禪))이 될 수가 없다.
※ 석존이후(釋尊以後) 육조(六祖)까지 삽삼(三十三) 조사(祖師)가 화두선(話頭禪)을 참구(參究)한 사실(事實)이 없다.
그리고 청화큰스님 법문(2001.10.7일 성륜사 법문) 가운데서 보면 중국의 송나라 이후 명나라(중국불교가 가장 왕성한) 때 4대 고승이 다 화두 문중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이 한결같이 화두를 반대하고
염불을 주장했다고 하셨다. 4대 고승이 화두의 병폐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들 역시 화두를 타파하고 보니까 자연히 반야 실상염불로 넘어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은 큰스님 대중설법 중에서 발취한 것이다.
<2001.10.7일-성륜사 법문에서 옮김>
화두란 것이 언제 어디서 나왔는고 하면, 중국 송나라 때 나왔습니다. 화두를 지금 놔야 한다는 당위성當爲性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 불자님들도 깊이 생각하십시오. 소홀히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아버지가 했다던가, 금생에 자기 스승이 했다던가, 또는 전통적으로 우리 종단宗團에서 했다던가, 하는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인습적因襲的으로 거기에 다 묵수墨守해서 덮어놓고 따라갈 그럴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은 정보화시대 아닙니까? 정보화 시대라는 것은 아주 냉철한 그런 지식적인 정보로 해서 우리가 정사正邪를 판단해서 비판批判해서 가려야 합니다.
화두라는 것은 중국 송나라 때 대혜종고大慧宗杲스님이 비로소 정형화定型化시켰습니다. 달마스님이 만든 것도 아니고 또는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粲, 4조 도신道信, 5조 홍인弘忍, 6조 혜능慧能 그런 분이 만든 것도 아닙니다. 또 그 뒤 마조馬祖스님이나 임제臨濟스님이나 그런 분들이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송나라 때도 참선한 사람들이 다 화두를 한 것이 아니라 대혜종고스님 그 일파에서만 화두를 그이가 정형화시켜 화두 쪽으로 유도誘導 했습니다.
그 당시도 저사抵死(주:抵死爲限-죽는 한이 있더라도 정한 마음을 굳게 잡음)해서 적극으로 저사抵死해서 화두를 반대한 스님네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화두 없이 잠자코 마음을 관조觀照하자는 묵조선黙照禪을 하는 파가 이른바 조동종曹洞宗이라 해서 굉지정각(宏智正覺) 스님이 그것을 지도 했어요.
또는 기왕에 화두를 할 바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 화두를 해라. 이래 가지고 그 당시에 대혜종고大慧宗杲 스님하고, 화두를 내 놓은 대혜종고스님하고 같은 시대고 같은 나이가 동갑이어요. 저는 그런 관계가 모호해서 제가 여러 번 봤습니다. 여러 번 봐서 제가 문헌적으로 정확히 외우고 있습니다. 대혜종고스님 하고 같은 동갑인 진헐청요眞歇淸了스님이란 그 스님입니다.
그분은 기왕에 화두를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아미타불阿彌陀佛 넉자를 화두(四字名號)를 해라. 아미타불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의 본래면목이기 때문에 불교라는 것이 우리 마음의 본래의 자리, 마음의 본래 자리를 깨닫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에 화두라는 것도 역시 마음의 본래를 깨닫기 때문에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니까 기왕에 화두를 할 바에는 그 의심만 주로 하는 그런 쪽으로가 아니라 그 부처님을 우리가 100% 신뢰하는 그런 아미타불 화두를 해라. 그래서 그 진헐청료眞歇淸了스님이 아미타불 화두를 그렇게 했어요.
그러다가 중국 송나라를 지나 명나라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와 같이 구구하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바빠서 스스로 역사적 고찰을 하기가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송나라를 지나면 명나라 아닙니까? 명나라 때가 그 연수年數도 굉장히 많고 명나라 때가 고승高僧이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송나라 때보다도 훨씬 고승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화두파, 화두를 한 그 파派에서 또 고승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다 화두를 또 다 반대했어요. 화두파에서 나왔는데도 화두를 반대를 했습니다. 누군고 하면 운서주굉雲棲袾宏이라, 지금『선관책진禪關策進』이라고 훌륭한 책이 있습니다.
고승들의 종파는 같은 화두파였는데 그 분들은 다 화두를 반대했습니다. 운서주굉雲棲袾宏이라, 그 분도 명나라 불교를 지도하다시피 하신 분이어요. 명나라 때 제일 유명한 분입니다. 운서주굉(雲棲袾宏1532∼1612)이라...
또 감산덕청憨山德淸(1546∼1623)이라 이 분도 위대한 분입니다. 또 자백진가紫栢眞可(1543∼1603)라 이분도 유명한 분이고, 또 우익지욱藕益智旭(1596∼1655)이라. 이 네 분이 명明나라 때 4대고승四大高僧이어요. 4대고승입니다. 4대고승이 다 한결같이 방금 제가 말씀드린바와 같이 염불 쪽에다 역점을 두고서 창도唱導를 하신 분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에서는 어찌하여 지금까지도“화두 아니면 참선이 아니다”이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그 송나라 때가 한국으로 치면 고려高麗 때에 해당합니다. 고려 때 중국 들어가서 대혜종고스님이 이끄는 세력이 제일 강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법을 배울 바에는 세력이 제일 강한 쪽에 가서 배우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화두 하는 쪽에서 법을 배워 왔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송나라 때는 아까도 말씀마따나 우리 한국으로 치면 고려 땐데 고려 때에도 고려 말엽에는 불교가 굉장히 타락을 했습니다.
어째서 타락을 했는고 하면 종교라는 것이 항시 정치세력하고 간격을 두어야 되어요. 그런데 정치 세력과 딱 밀착이 되니까 말입니다. 권력하고 밀착이 되면 부패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고려말엽에는 아주 불교가 굉장히 부패해서 여러분들도 아르시지만 신돈(辛旽)이 같은 승려가 나왔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조李朝가 서지 않습니까? 이조 500년李朝五百年 동안에는 고려 때 불교를 잘못으로 또 그 부패한 앙화殃禍로 해서 그 과보果報로 해서, 우리가 꼭 나쁜 짓하고 그러면 그 과보를 받습니다. 그런 과보로 해서 이조 500년 동안에는 우리 불교가 배불승유排佛勝儒라, 유교인儒敎人들에게 핍박逼迫을 당해서 우리 불교를 믿는 우리 스님들은 서울 장안도 500년 동안에 못 들어갔습니다. 그런 핍박을 당했어요. 그런 가운데서 불교가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아까 말씀마따나 이조 500년 동안에 중국은 그 명나라 때가 되어서 가장 불교가 왕성한,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때를 통해서 불교가 가장 왕성할 때였는데, 불행히도 우리는 그 명나라 때 불교가 우리나라에 못 들어왔단 말입니다. 그래서 고려 말엽까지 들어온 그 부패 상황이 그 나중에 일제日帝 36년간이라, 또 8·15해방 된 뒤에라, 또 6.25사변이라, 이런 가운데서 부처님 가르침이 도저히 제대로 궤도軌道 있게 발전을 못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만 네면 그냥 화두를 한 번도 안 해본 분도 그래요. 참선도 안 해본 분도“화두 아니면 참선이 아니다”한국 선방 지금 현재가 다 그렇습니다. 화두 아니면 참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달마가 한 것도 아니고, 석가모니가 한 것도 아니고, 6조혜능六祖慧能스님이 한 것도 아니고, 지금 참선의 교과서敎科書 같은 것이 육조단경六祖壇經이어요. 육조단경에도 화두란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큰스님 태안사 법문에서 화두선을 포용하신 이유는 당시 화두선 쪽에서 염불선을 타력으로만 생각하고 외도라 너무나 강하게 몰아 붙였기 때문이지 결코 화두를 선호(選好)하시지는 않으셨다고 본다. 반야 실상염불을 마음 바탕에 깔고 기도도 하고, 화두도 하고, 주문도 하고, 경도 읽고, 사경도 하라는 것은 실상염불을 바탕에 깔고 일상생활도 하고, 밥도 먹고,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염불참선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모든 선 수행법이 순수염불(純粹念佛) 즉심염불(卽心念佛) 즉 염불선(念佛禪)으로 귀일(歸一)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도 염불선에 대한 법집(法執)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깊이깊이 그리고 폭넓게 생각해 보면 결코 법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진여불성(眞如佛性) 자성불(自性佛) 자리를 놓치지 않고 다시 말하면 한마음(一心)자리 한생명(一佛)자리를 놓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나 본래면목 자리를 놓치지 않고 화두를 드는 것이나 같다는 것이다. 실상자리를 놓치고 화두만 의심하는 것은 선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화두 아니면 선이 아니다’하는 말은 성립될 수가 없다. 그래서 자력과 타력을 겸한 진여실상 염불선도 당연히 최상승선(最上乘禪)이며 더 나아가서 모든 다른 종교의 수행법도 다 포용할 수 있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아직 미(迷)한 경우에는 자력과 타력이 둘이지만 오(悟)의 입장에서 보면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니다.
큰스님 말씀으로 화두 그 자체는 선이 아니고 화두가 선이 되려고 하면 그 바탕에 반야실상염불(般若實相念佛)을 깔아야 비로소 화두선이 된다는 뜻이다. 화두가 시초에 나오게 된 배경도 그렇고<육조혜능대사와 남악회양선사와의 ‘심마물 임마래’선문답> 달리 이야기 하면 우리 일상생활에서 밥 먹는 것도 그 자체는 선이 아니지만 밥을 먹는 마음자세가 실상염불을 깔고 밥을 먹으면 바로 밥 먹는 그것이 선(禪)된다는 것이다.
염불선(念佛禪)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쉽고, 누구나 할 수 있고, 공덕(功德)도 제일 높고, 타 종교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화큰스님의 위대한 업적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고려 중엽부터 현재까지 근 800년동안 잘못된 화두선 일변도의 한국 선법을 석가모니 부처님부터 삽삼조사(三十三祖師)에 이르는 정통수선법(正統修禪法)인 염불선을 다시 복원시켰다는 것이다."
우주의 실상을 드러낸 금타대화상의 『보리방편문』을 중심으로한 반야실상 염불선은 미래 한국 선의 방향뿐만 아니라 세계정신 문화의 중심에서 통불교적 통종교적 회통사상(會通思想)으로 인류문화를 이끌어 갈 것으로 확신한다.
큰스님이 우리 한국 선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하신 것은 한국 화두선이 우수하다는 것이 아니라 원효스님을 시작으로 의상, 대각, 태고, 보조, 나옹, 진묵, 서산, 사명에 이르는 통불교적인 회통사상이 우수하다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1992.10.25일 미국 뉴욕법문 참조> 즉 불조의 정통선 염불선법이 우수한 것이고 실상염불선이 되어야 올바른 원통사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큰스님은 염불선을 어떻게 정의 했는가? 간단하다. 그러나 그 뜻은 무궁무진하다. 친필을 직접 올린다.
큰스님 친필 두 번째 항 * 염불선 : 시방삼세에 두루한 자성불의 지혜광명을 관조하면서 닦는 선을 말함. 이 간단한 문장에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큰스님 법어집 [원통불법의 요체]의 제7장 제1절 4항을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실상관(實相觀)과 선(禪)과 염불선(念佛禪)은 어떤 관계인가?>
선(禪)이란 가상(假相)과 가명(假名)을 여의고 불심(佛心) 곧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본체를 참구(參究)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 체성(體性)을 여의지 않으면 비단 화두참구(話頭參究)뿐만 아니라 관법(觀法)이나 염불(念佛)이나 주문(呪文)이나 다 한결같이 참선(參禪)입니다. 따라서 근본 체성을 떠난 공부는 참선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중도실상 곧,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계를 관찰하고 상념하는 염불이 바로 실상염불(實相念佛)인데 그것이 또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참구하는 염불선(念佛禪)인 것입니다. 일체 모든 화두도 이러한 본래면목 자리, 진여불성 자리를 분명히 참구하고 그 자리를 증득하고자 하는 의단(疑團)이 되어야 합니다.
앞에서 선(禪)과 염불에 대해서 대강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성미타 유심정토(自性彌陀 唯心淨土)'라, 우리 본래면목이 바로 아미타불이요 마음이 청정하면 현실세계 그대로 극락세계이니 염불도 근본 성품을 안 여의고 한다면 곧바로 참선이요, 참선과 염불이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른바 진여(眞如)나, 실상(實相)이나 중도실상의 본래면목 자리는 상대적으로 분별하는 경지가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는 부사의한 부처님 광명이 충만한 경계입니다. 그것은 바로 진여실상의 경계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업장이 녹아짐에 따라서 점차로 진여불성의 광명이 밝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도 한결 밝아지고 어두운 표정도 말끔히 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가행정진(加行精進)을 계속하면 업장의 멸진(滅盡)에 따라 본래 부처인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스님께서 금생에 꼭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큰스님의 [육조단경]역서 머리글 ‘해제’에 다 하셨다고 생각한다. 문장이 길어서 인용은 생략하나 수선(修禪)자에게 필독의 지침이다.
이조 말엽의 대선지식인 초의선사도‘사변만어(四辨漫語)’에서 화두선이 불조의 정통선이 아님을 역사적 증거를 들어서 반박하셨고 해방후 정화불교이후 전국 화두선방에서 대선지식으로 회자되셨던 월인(月印)큰스님께서도 90년대 초 태안사를 직접 방문하시여 세납으로나 법납으로나 연하이신 청화큰스님의 손을 잡으시며 ‘청화 자네가 이겼네!’ 이 한 마디는 우리 한국 선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보면 확실하다.
월인큰스님이 불일회보(佛日會報)(1994년 6월 1일자, 제162호, 송광사) 특별대담에서 ‘화두를 타파하고 보니 [나무아미타불] 정토발원이 보이더라는’뜻으로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기사로 인해서 당시 우리나라 대표적인 포교지인 ‘불일회보’는 폐간이 된다. 10여년이 지난 최근에 다시 복간 소식이 있다.
그리고 ‘능가사자기’의 4조 도신선사의 법문을 보면 염실상(念實相=念佛)이 제일참회(第一懺悔)요 더불어서 삼독심(三毒心)을 녹인다고 명문으로 기록 되어 있다. 여기 그 부분을 큰스님 친필로 옮긴다.
또 [육조단경]에
‘수지일체만법(須知一切萬法) 개종자성기용(皆從自性起用) 시진계정혜법(是眞戒定慧法)’
‘모름지기 알지라, 일체만법이 모두가 자성 불성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자성에 좇아서 활용을 내는 것이 바로 참다운 계·정·혜 법’이라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불리자성불(不離自性佛) 자성염불을 떠나지 않고, 부처마음(佛心)을 바탕에 깔고 모든 용(用)을 내는 것이, 다시 말하면 일체만법은 부처님(자성불)의 묘용(妙用)임은 알고 자성에 비추어서 활용을 내는 것이 참다운 계요, 정이요, 혜라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육조단경 이 부분을 큰스님 친필로 첨부한다.
일체존재 일체만사가 일대인(一大人:자성불, 아미타불)의 대자재경(大自在境)임을 깨닫는 것이, 다시 말하면 일체존재 일체만사가 자성불이요 아미타불임을 깨닫는 것이, 돈오(頓悟)라는 뜻이 되겠다.
이와 같은 육조대선사의 혜명을 이어서 우주의 실상이요 우리 마음의 실존을 간명직절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금타(金陀)대선사의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이다. 그러니까 『보리방편문』을 완전히 100% 신해(信解)하는 것이 선오(先悟)요 돈오(頓悟)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놓치지 않고 염념상속 이어가는 것이 일행삼매 반야바라밀이 된다. 그래서 염불삼매에 들어서 무수겁의 업장을 녹여내면 이 세상 이대로 영원한 행복을 감득(感得)할 수 있다고 본다.
큰스님의 『보리방편문』의 대요(大要)를 친필로 올린다.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친필유고에서 [보리방편문] 염불선 수행법의 특징과 장점을 '열반안(涅槃岸)에 도(到)하는 첩경(捷徑)' 이라 전제하시고
1. 불법(佛法)의 궁극적(窮極的)인 집약적(集約的) 교설(敎說)이므로 선오후수(先悟後修)의 묘체(妙諦)이며,
2. 불변수연(不變隨緣) 체용성상(體用性相)의 이(理)를 도파(道破)한 묘관찰지(妙觀察智)로서 설법단의(說法斷疑)하여 여래(如來)의 부동지(不動智)를 득(得)한다.
3. 정혜균등(定慧均等)의 심(心)을 일경(一境)에 주(住)하는 묘(妙)한 비결(秘訣)이며,
4. 여래(如來)의 과상법문(果上法門)이기 때문에 인과상응(因果相應)하여 범부위(凡夫位)에서 오히려 상사각(相似覺)을 성취(成就)한다.
5. 최고(最高)의 세계관(世界觀) 및 인생관(人生觀), 최선(最善)의 생활관(生活觀) 확립(確立)이며,
6.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의 겸수(兼修)이기 때문에 지정의(知情意)의 조화적(調和的) 수행(修行)이 되어 법이적(法爾的)으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속성취(速成就)를 가능케 한다.
7. 최선(最善)의 상념(想念), 최선(最善)의 사유(思惟), 최선(最善)의 사색(思索), 최선(最善)의 관조(觀照), 가장 궁극적(窮極的)이고 보편적(普遍的)인 행법(行法)이기 때문에 성불(成佛)의 첩경(捷徑)이다.
* 고보비로정(高步毘盧頂) 구경대안락(究竟大安樂) *
여기「보리방편문」의 삼신불(三身佛) 신앙(信仰)은 세친보살의 「십지경론(十地經論)」과 「육조단경(六祖壇經)」의 귀의일체삼신자성불(歸依一體三身自性佛) 신앙(信仰) 등(等)에 나타나 있으며 반야실상지혜(般若實相智慧)를 바로 들어낸 진여(眞如) 법계연기론적(法界緣起論的) 연기관(緣起觀) 실상관(實相觀)이다.
「보리방편문」은 관심염불(觀心念佛:卽心念佛) 즉 염불선(念佛禪)의 수행법(修行法)으로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達磨大師)부터 사조도신(四祖道信) 6조혜능대사(六祖慧能大師)로 이어 내려온 순선시대(純禪時代)의 일관된 정통참선(正統參禪) 수행법으로 소의(所依) 경전(經典)은 대승경전(大乘經典)이 다 포함되지만 특히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을 들 수 있다.
끝으로 큰스님께서 불조의 정통선(正統禪)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신 귀중한 친필자료로 이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본래(本來) 선(禪)은 선나(禪;Dhyana)의 준말로서 정려(靜慮), 삼매(三昧;Samadhi) 등으로 번역되어 통일된 정사유(正思惟)를 의미한다. 그러나 달마대사(達磨大師)이후 중국(中國)을 거처 한국(韓國) 일본(日本) 등으로 전래된 이른바 선종(禪宗)의 선은 비록 그 상(相)은 정려(靜慮)의 뜻을 취하나, 그 본체(本體)는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서 본래 부처임을 먼저 깨닫고[解悟] 모든 분별시비(分別是非)를 여의고 닦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임제종(臨濟宗)의 화두선(話頭禪)이든 조동종(曹洞宗)의 묵조선(黙照禪)이든 염불(念佛)이나 경론(經論)을 공부하든지 간에 일체만유(一切萬有)가 본래(本來)로 평등(平等)한 반야지혜(般若智慧)를 깨닫고[解悟] 닦아 나가면 모두 한결같이 붓다의 정통선(正統禪)이 되는 것이다.
김영동 禪
1. 법고
2. 목어
3. 운판
4. 범종
5. 예불문
6. 발원문
7.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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