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내 강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도올서원에서는 단순히 한문이라는 언어를 습득하는게 목적이 아니에요. 도올서원의 목적은 한문이라는 언어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뜻, 삶의 방식, 세계에 대한 인식구조 같은 것을 배우는데 있어요. 즉, 도올서원은 한문 속에 들어있는 세계를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하자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단 말이죠. 그런데 옛사람들이 한문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세계관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나는 '동양의 예술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문명이든지, 그 문명의 예술의 측면을 빼버리면 볼 게 없습니다. 더군다나 한국문명은 음악적 측면을 가장 자랑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예술사상을 논하지 않을 수 없죠. 그래서 동양문명의 포괄적인 음악문화에 대한 인식을 전하기 위해 이런 강의를 마련해 왔습니다. 지난 2림 때는 김혜숙 선생님 한테서 강의도 듣고 가야금 산조도 직접 듣는 기회를 마련했었는데, 요번에는 우리나라 가야금의 명인이자 이론적으로도 탁월한, 제가 가장 존경하는 황병기 선생님을 어렵게 모셨습니다. 황병기 선생님은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제 말이 따로 필요하진 않을 거에요. 하지만 재가 보고느낀 황병기 선생님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60년대 내 세대가 대학다닐 적만 해도, 이 국악이라는 용어는 그야말로 계급적 성격이 매우 뚜렷했습니다. 국악은 천인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멸시했었거든요. 藝人들의 엄청난 음악성은 당연히 인정받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악인들은 무속인이라 하여 상당한 천시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경기고교와 서울법대를 나오신 황선생님이 국악한다는 사실은 이 사회에서 화제도 보통 화제가 아니었어요. 우리가 젊었을 적에 황선생님에게서 받은 신선한 충격을 여러분은 잘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때에 황병기 선생님의 삶은 굉장한 낭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나와 친구들은 늘상 황병기 선생님의 이야기를 입에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내가 황선생님에 대해서 알게 된 때는 대만 유학시절이었습니다. 그 댱시에 황선생님께서는 대만에 와 계셨는데, 나는 황선생님과 숙소가 가까와서 자주 교류를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황병기 선생님과 가까운 친구분인 장익 신부님이랑 저랑 대만에서 만나면 황병기 선생님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하곤 했죠. 그 뒤로 내가 한국에 와서도 선생님의 말씀을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황병기 선생님에 대해서는 많은 기억을 하고 있지요. 여러분은 우리나라 가야금 작곡의 전통을 이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황선생님의 가야금 산조를 통해 선생님을 잘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오늘은 황선생님께서 상당히 폭발적인 강의를 하시기로 하셨어요. 그러니깐 여러분들이 선생님께서 마음놓고 자유롭게 강의하실 수 있도록 집중해서 단정한 자세로 강의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1.들어가는 말
방금 김용옥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받은 황병기입니다. 먼저 국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전체 윤곽을 짚어보고, 그 다음에는 우리나라 음악의 특색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습니다.
음악이라고 하면 참 이상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람이 음악을 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지 않느냐, 예를 들자면, 여러분이 하루종일 음악을 전혀 하지않고 살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듣지도 않고. 그래도 문제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하루를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일년도 그렇게 살 수 있고, 십년도 그렇게 살 수 있고, 심지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음악이라는 것을 전혀 듣지않고 살아도 괜찮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동양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고 말텐데, 서양 사람들은 증명하고, 증거를 잡아보려는 실증적인 성향이 커서, 실제로 20세기 초엽에 서양의 음악학자들 중에서, 음악을 하지않고 사는 인간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를 알아보기 위해, 이론적으로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인간을 실제로 찾아보려고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일이 있습니다. 조사를 나간 것이지요. 그런데 보통, 원시시대 생활을 하다거나 굉장히 문명이 뒤떨어졌다거나 문화가 뒤떨어졌다고 하면 언뜻 생각하기에도 아프리카 정도를 생각하기가 쉬울 겁니다. 그러나 진짜 옛날 문화, 식기시대 문화를 지금까지 그대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태평양에 많다고 합니다. 태평양에 섬이 워낙 많기 때문에 어느 섬에 가면 문명하고는 아무 관계없이 지금도 석기시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20세기 전반에는 많았던 모양이에요. 요새는 또 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태평양 지역을 조사를 했어요. 실제로 음악을 하지 않으면서도 사는 인간도 혹시 어느 섬엔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해서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줄 아세요? 음악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옛날 생활을 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현대인, 문명인보다 더 음악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따라서 오늘날의 우리보다 옛날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어떤 의미에서 원시시대로 가면 갈수록 음악이 인간생활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구나 하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사람들한테는 우선 문자가 없습니다. 글이 없단 말이지요. 그런데 글이 없는 씨족이라 하더라도 그 씨족들이 자기네 씨족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예외없는 성질인 모양이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문자가 없기 때문에, 자기네 씨족의 역사와 중요한 가치관, 우주관과 같은 것을 전부 노래로 만들어 전합니다. 그리고 어린이가 커서 성년이 된다던가, 짝을 짓는다던가, 이 모든 것을 할때, 전부 음악에 의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오히려 현대로 내려올수록 음악이 점점 중요성이 없어져 버렸죠. 예를 들자면 여러분들이 비행기를 타거나, 정거장에 가거나 또는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다방에 앉아있거나, 어디에 앉아있거나 음악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려오지 않습니까? 그 음악은 실질적으로 따지면 '크리넥스 티슈' 같은 거예요. 그냥 우리 귀를 슬쩍슬쩍 닦아 준다고 할까? 기분좋게 해주는 것에 불과한데, 지금으로부터 몇 십 년전, 제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크리넥스 티슈같은 것은 전혀 없는 것이고, 종이라는 것은 굉장히 신성한 것이라 여겼죠. 종이에는 반드시 글을 쓰는 것이고, 서도를 하는 것이니까 심지어는 우리 속담에 종이 한장도 마주들면 낫다고 할 정도로 종이를 중요시 했죠. 옛날로 올라갈수록 종이에 대한 신성감이 굉장했고, 심지어 책을 넘어다니면 안된다 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종이다 하면 머리속에 대뜸 떠오르는 것이 크리넥스 티슈 같은 것으로, 팍팍 빼가지고 코풀어가지고 내던지는 그런 것이죠. 음악도 똑같습니다. 지금은 음악이 여기저기서 마구 들리는데 그것을 듣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없어요. 전화에서 잠깐 기다리라 하면서도 음악이 나오고... 그것은 신호음이지 음악이 아니죠. 심지어는 자동차가 후진할 때 음악이 나오게끔 했는데. 베토멘의 명곡을 달아서는. 자동차가 후진할때 똥구녁에서 베토벤 음악이 나오거든요. 베토벤이 살아있었으면 아마 기절을 했을 겁니다. 쓰레기 치우라고도 음악을 하고, 똥차도 물론 음악을 하면서 돌아다니고, 그래서 음악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됐지만, 옛날로 가면 갈수록, 특히 원시시대에는 음악이라는 것은 굉장한 것이었죠.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냐 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지만, 사회가 있는 곳에 음악없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있으면 음악은 있어요. 사회가 있으면 음악이 있다는 말은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음악은 사회의 소산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사회가 음악을 만들어낸다... 언뜻 생각하면 베토벤이 명곡을 작곡한 것 같지만 즉, 베토벤 곡은 베토벤 개인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만약에 그 당시 베토벤이 우리나라 저 외딴 섬에서 태어났으면 말똥 굴리는 소리나 좀 하다가 말았을 겁니다. 무슨 '월광'이고, '운명'이고, '합창'이고 썼을리가 없죠. 또 베토벤이 에스키모족으로 태어났으면 물개 때려잡는 소리나 좀 지르다가 말았을지 모르죠.
그러니까 어느 개인이 음악을 만드는 것 같아도 사실은 음악은 사회가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국악은(나라의 음악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우리의 전통사회가 만들어낸 겁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조선조 후기에서부터 우리가 물려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술이나 문학인 경우에는 고려시대나, 신라, 삼국시대 것을, 많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그 당시의 미술을 볼 수도 있고, 그 당시의 시를 지금도 우리가 읽을 수 있습니다만, 음악인 경우에는 고려시대 음악이나, 삼국시대 음악이나, 그것들은 현재 어떻게 됐느냐하면 전혀 없어요. 그래서 '무형'문화재인 것이죠. 음악이라는 것은 노래부르거나, 누가 악기를 연주하거나 하면 그 순간에 완전무결하게 사라져 버려요. 똑같은 예술이지만 흔적도 없는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그래서 예전의 음악은 현재 들어볼 길이 없습니다. 조선조 초기나 중기의 음악도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 국악하는 사람들의 전통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조선조 후기때 음악하는 사람들한테 배워가지고 지금 연주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의 악보는, 그전에도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으로는 세종대왕 때의 악보가 최초의 악보입니다. 세종대왕때 작곡된, 창작된 곡들이 세종실록에 엄청난 분량이 실려있어요. 그것이 최초이기 때문에 그전의 음악은 전혀 알길이 없어요. 결국 전통음악은 조선조 때의 음악, 조선조 중에서도 조선 후기에서부터 우리가 물려받은 것에 불과한데, 그 당시의 사회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회는 대체적으로 상층사회와 기층사회롤 나눌 수 있습니다. 상층사회라 하면, 흔히 이야기하는 양반사회이고, 서양식으로 이야기 하면 귀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입니다. 그 다음, 기층사회라 하면, 평민 또는 서민이라 할 수 있겠죠. 대체적으로 그런 두개의 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음악도 양쪽 사회가 모두 만들어냈습니다.
2. 상층사회의 음악: 正樂
(1)궁정악: 雅樂
이렇게 해서 상층사회에서 나온 음악을 오늘날 대체적으로 정악(正樂)이라고 합니다. 뜻을 말하면 '바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말이란 대체적으로 지배층들이 만들어 사용하듯이 조선조 후기의 상층사회에서 주로 선비들이 자기네 음악을 가리켜 정악이라 부른 것입니다. 원래 정악이라는 말은 새로 만든 것이 아니고, 이 말도 그 전의 중국에서부터 사용되던 말입니다. 좋은 음악이란 뜻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정악이라는 말도 쓰고, 또는 대악(大樂)이라는 말도 씁니다. 어떻든 정악이라는 말은 조선조 후기서부터 쓰게 되었는데, 그 조선조 후기에 '정악전습소'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정악을 가르치는 학원인 셈인데, 그때부터 이 말이 더 일반화되기 시작했죠.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음악 작곡자로 가장 유명한 분이 홍난파 아닙니까. 본명은 홍영후죠. 홍영후가 정악전습소 졸업생입니다. 정악전습소 안에서 양악도 가르쳤던 것입니다. 어떻든, 예전의 선비들은 민속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민속악은 보통 '소리'라고 하거나 '소리한다'라고 했었는데 요즘은 이것을 대체로 민속악이라 합니다. 즉, 상층사회에서 나온 음악은 정악이라 하고, 기층사회에서 만들어진 음악을 민속악이라 이름 붙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사회에서는 상층사회속에 더 높은 계층으로 볼 수 있는 또다른 상층사회가 있었습니다. 특수사회라고 볼 수 있는 이 상층사회는 바로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궁(宮)'입니다. 따라서 궁정에서 하던 음악과 궁바깥의 상층사회에서 하던 음악으로 나뉘어질 수 있습니다.
궁정에서는 왜 음악을 했을까요? 지금 같으면, 중앙청이라든가 청와대에서 음악할 일이 없죠. 그곳은 정치하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예전에는 궁에서 왜 음악을 그렇게 중요시 했을까요? 궁에서는 의식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의식은 예(禮)에 포함이 되는 것이겠죠. 예에는 반드시 악(樂)이 붙기 때문에 예와 악은 표리의 관계에 있고, 그것이 예악사상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궁정에서 음악이 보통 중요한게 아닙니다. 예와 악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었죠. 그래서 각종 의식때 음악을 하는데 그와같이 궁정에서 하던 음악을 통틀어서 아악(雅樂)이라 그럽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요즘 그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이렇게 궁정악을 아악이라 하는 용어법은 전통적인 용어법이 아닙니다. 요즘 용어법이죠. 전통적인 용어법에 대한 것은 조금후에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궁정에서는 의식을 위해서 음악을 하는 것이지, 음악감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콘서트 홀을 차려서 앉아서 그렇게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여러분들은 음악을 본격적으로 들을려고 하면 음악홀에 갑니다. 음악홀이 대체로 어떻게 되었냐 하면 무대가 있고 객석이 있어요. 그리고 음악하는 사람이 무대에 올라오면 객석은 불까지 꺼버려요. 객석에 있는 사람은 숨쉬는 소리까지 조심할 정도로 조용해야 돼요. 옆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기침만 해도 옆사람이 눈을 부라립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관객은, 즉 청중은 쥐죽은듯 앉아 있어야 하고, 불까지 끄고 꼼짝도 못하게 하고, 음악한다는 사람만 무대위에서 올라가서 불은 나한테만 비춰라 그럽니다. 그 사람에게 불을 비추면, 혼자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악기를 연주할 적에 손이 벌나비 날듯 한다든가 해서 듣는 사람 기를 죽여요. '내가 이 정도로 잘한다. 당신들은 꼼짝말고 나만 쳐다봐라' 하는 식이죠. 그러면 여러분들은 음악을 듣는다하면 으례히 그렇게 듣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그 선입관을 버리고 요즘 콘서트 하는 것을 보면 해괴망측 합니다. 모든 선입관을 고정관념을 다버리고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사는 동네에 만약 개들이 창고속에 전부 몰려들어가서, 다른 개는 모두 엎어져 있고, 개 하나만 앞에 나와서 마구 짖는다고 해보세요. 그러면 저 개들이 전부 다 환장을 했다고 때려잡아 먹던지 팔아 치우든지 해야지 하면서 야단을 할 겁니다. 또 어떤 개는 자기 목청이 좋아서 그런지 어쩐지 모르겠는데, 밤이되면 장독대를 통해서 지붕으로 올라갑니다. 지붕위로 올라가서 달을 쳐다보며 짖거든요. 개가 '워우∼' 하면서 노래를 뽑는데 그러면 그 집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개는 때려잡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멀쩡하게 살다가 느닷없이 불꺼놓고, 딴사람들은 조용하고 한놈만 나가서 '짖느냐', 그말입니다. 그래서 콘서트라는 것이 보통 특이하고, 해괴망측한 것이 아니죠. 이렇게 해괴망측한 콘서트를 하려고, 우리나라 궁정에서 음악을 한 것은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어떤 예를 하려고 음악을 한 것입니다. 감상이 아니죠.
궁정에서 하는 예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종교적인 뜻이 있는 예(禮)고, 또 하나는 종교적이 아닌, 말하자면 세속적이라거나 일반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예로서 하는 것은 조선조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둘이 있습니다. 조선조는 유교사회이고, 유교사회이기 때문에 공자를 굉장히 중요시 한단 말이죠. 유학을 공부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학문이라든가 정치라든가 하는 모든 생활에 있어서 공자를 받들어 모십니다. 그래서 공자를 받들어 모시고자 신위를 놓고 제사를 지내요. 제사라는 것이 죽은 사람에 대한 경의의 표시죠. 그것을 하는 곳이 성균관 대학 속의 '문묘(文廟)'입니다. 대학내에 담을 다시 쳐놓고 그 속에 문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문묘가 공자 제사지내는 사당입니다. 그 문묘에서 제례를 지낼 적에는 임금이 나가서 지냈죠. 그러니까 장소는 문묘에서 하지만 궁정의 행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문묘제례악이라 하고 지금도 물론 하고 있습니다. 성균관 대학교에서 봄에 한번, 가을에 한번, 두번 지내고 그때마다 음악을 합니다. 그냥 제사만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지내는 것이 하나의 예이고, 그래서 그것을 '문묘제례악'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문묘제례악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중국 태고 때의 아악(雅樂)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아악이라는 말이 진짜 전통적인 의미의 아악이예요. 제가 처음에 궁정악을 통털어 아악이라고 하는 것은, 요즈음의 용어법이라고 그랬죠. 예전에는 아악이라고 하면, 중국 태고 때의 음악만 '아악'이라 그래요. 중국에서도 음악이 있을 것 아닙니까. 민요에서부터 선비들이 하던 고상한 것가지 모든 음악이 있죠. 이 중에서 딱 잘라가지고 태고때부터 내려오는 것만 아악이라 합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후세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무리 명곡이래도, 곡이 아무리 고상하고 좋아도 그것은 아악이 아닙니다. 그것이 왜 그렇게 됐느냐 하면, 아악이라고 하는 말 자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공자인데, 공자가 처음에 아악이라는 말을 썼을 적에는 어떤 특수 음악용어로 쓴게 아니었죠. 그냥 우아한 음악, 좋은 음악이라는 식으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논어만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공자라고 하는 사람은 학문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할까 하고, 어떻게 하면 인간의 윤리를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것만 고민한 사람이 아닙니다. 공자는 어떠한 사람인가 하면, 우리들이 파악한 바로는 굉장한 멋쟁이예요. 하나의 쉬운예를 들자면, 공자는 누가 노래를 부르면 그냥 무심코 듣는 법이 없어요. 유심히 듣고난 다음에 앙콜을 청합니다. 음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노래를 한다든가, 악기를 연주하는데 딴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있고, 딴데 쳐다보고 하는 것이 굉장히 기분 나쁘거든요. 자기가 음악 연주하는 것을 유심히 들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음악을 유심히 듣고난 다음에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던지, 다시 해달라고 앙콜을 청하고, 그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그 사람과 더불어 합창을 같이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또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말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공자가 '소(韶)'라고 하는 음악을 듣고, 소라고 하는 음악이 옛날 책에 많이 나오죠. 그 소라는 음악을 들은 뒤 석달동안 고기맛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비프스테이크를 뜯어도 이게 뭔지 모르겠다 이거예요. 그 말은 뭐냐, 석달동안 그 정도로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하는 소리겠죠. 그것을 좀 과장했다고 할까. 그런식으로 표현한 것이죠. 그러고난 다음에 '음악이 이정도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을 내가 지금까지 몰랐었다' 하고 감탄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헌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 말뜻의 이면을 짚어볼 적에, 공자가 모르면 모르지만 상당히 여자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런말은 나오지 않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여자까지 좋아했다면 지금말로 공자는 플레이 보이죠. 어쨌든 공자는 굉장히 인간적이고 자기 제자가 죽었을 때 울기도 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떻든 공자처럼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은 인류 역사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논어에 보면 성어악(成於樂)이라고 인간은 악(樂)에서 완성된다는 말까지도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공자는 좋은 음악은 무척 좋아하지만, 싫은 음악은 무척 실어하는 성질이 있어요. 그냥 웬만한 음악은 다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싫어하는 음악은 굉장히 싫어해요. 그래서 그런 음악을 '난세지음(亂世之音)'이라 그랬죠. 세상을 어지럽히는 소리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난세지음과 같은 음악을 혐오한다' 라는 말까지 나오죠. 그와같이 공자는 좋아하는 음악과 좋아하지 않는 음악을 분명히 하는 성질이 있었습니다. 또, 공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이 '소'라고 하는 음악을 듣고서 석달동안 고기맛을 잃었다고 했죠? 그 음악이 무엇이냐 하면, 중국 태고 때의 음악이에요. 순(舜)임금이 만들었다는 음악입니다. 바로 이것을 공자는 기가 막히다, 그러면서 아악(雅樂)이라고 했어요. 저런 음악은 아악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때 아악이라는 것은 음악용어로 쓴 것이 아니라 정말 우아한 음악이다라는 것이지요. 결국 공자는 좋은 음악은 아악이다라고 했고, 좋은 음악은 순임금 때부터 내려오던, 중국 태고 때의 음악이다 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것이 후세에 영향을 주게되어 아악이라고 하는 개념이 생기면서, 그 아악은 중국 태고 때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라고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맨 처음에 음악은 사회의 소산이다라고 했어요. 사회가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했는데 이 말은 중국 사람들이 예전에 굉장히 강하게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무슨 생각까지 할 수 있냐면, 사회가 좋지 못하면 음악도 나빠지고, 사회가 좋아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음악은 좋은 사회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것으로 본 것이지요. 좋은 사회가 아니면 절대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좋은 사회라는 것은 어디 있느냐, 동서를 막론하고 이상적인 사회라는 것은 미래에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21세기, 22세기 이후 완전히 이상적인 세계가 올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반대로 미래에는 인간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과학자들도, 종교쪽의 사람들도 인류는 결국 멸망할 것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멸망이 바로 몇월 몇일날 온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죠. 어쨌든, 며칠 후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멸망이 온다고 생각하면서 이상적 사회는 '이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언제 있었느냐? 기독교에서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들었던 그때가 이상적인 사회가 있었던 때다 라고 했죠. 원죄도 없고, 뭣도 없고, 진짜 천국같은 세계는 '이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회가 점점 나빠져 가지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죄가 들끓고 있는 사회가 되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면, 이상사회가 언제인가 하면 바로 '요순시절'인 것입니다. 옛날에 이미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좋은 사회가 아니면 좋은 음악은 불가능한 것인데, 언제 좋은 사회가 있었는가 하면 요순시절이므로, 중국 태고 때의 음악이야말로, 바로 공자가 고기맛을 잊어버렸을 정도의 그런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음악은 태고 때의 것만 아악이고, 그 후대의 것은 무엇이냐. 후대에 만들어진 것은 좋건 나쁘건 어떻든 간에 통털어 가지고 아악의 반대개념인 '속악(俗樂)'에 들어가요. 궁정악이건 무엇이건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요. 궁정에서 연주해도 속악인 것입니다. 진짜 아악은, 즉 옛날 의미의 아악은 중국 최고 때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아악이 아니예요. 그런데 이 아악이라는 것이 참 괴상한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 중국 태고 때의 음악, 즉 요순시절의 음악은 이상적인 음악이고 참 기가 막힌 음악이다. 거기까지 이야기로는 참 편한데, 중국 태고 때의 음악, 요순시절의 음악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실, 아악은 없어요.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연주되는 순간에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그 옛날에 레코드판이 있습니까 테이프가 있습니까? 결국, 중국 태고때의 음악은 없는데,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좋은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되는가 하면, 후대에서 각 왕조마다 실질적으로 아악을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만들어야 돼요. 그러니까 웃기는 이야기죠. 아악은 원래 만들면 안되는 것이죠. 중국 태고때 음악인데 지금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지금 태고때 음악을 들어야 될텐데 태고때 음악이 없으므로, 각 왕조마다 국력을 기울여서 있는 심혈을 다해 아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만든다'는 개념은 전혀 없어요. 그러면 어떤 개념이냐, 중국 태고 때의 음악을 '찾는다' 그런 이야기 입니다. 찾는데, 찾는 방법은 무엇이냐? 그것도 없어요. 그러면 못하냐? 못해도 안돼요. 그렇게 좋은 것을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해요. 예를 들자면 당나라때 수도없이 아악을 찾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찾은것도 아니고, 만든 것도 물론 아닌데, 이게 중국 태고 때의 음악이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송나라가 되면 이것을 못믿는 겁니다. 당나라에서 하던 아악이라,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죠. '그 옛날의 순임금 음악이 그럴리 있어?' 하면서 다시 노력을 합니다. 다시 노력을 해서 만든 것이야말로, '이게 진짜 아악이다, 기가 막히게 좋지않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중국 송나라의 '휘종(徽宗)'이라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휘종때, 아악을 전부 정비해서, 진짜 좋은 것, 진짜 옛날 것을 만들어라 라고 명령을 해서, 또 만들어 가지고 휘종이 들어보니까 너무 좋고 너무 잘만들었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 태고 때의 진짜 아악이다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이, 삼국시대를 소재로 쓰면서, 예전의 김유신이 진짜 이렇게 살았소라고 쓰거든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김유신이 그럴리가 있소 하며 다시 쓴단 말이죠. 그럴때 자기가 김유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김유신을 찾아내는 것이라 여기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그래가지고 휘종이 들어보니까 이게 기가 막히게 좋단 말입니다. 따라서 이게 진짜 아악이야 진짜 아악이라니까 라고 선전을 하죠.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좋은 것은 이유가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유가 없죠. 그것은 그대로 좋은 것이죠. 예를 들자면, 자기 자식을 굉장히 사랑하는 어머니가 자기자식을 떡하니 쳐다볼때, '아 기가 막히다' 이말입니다. 자기 자식이 왜 기가 막히냐. 그 이유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기가 막히니까 기가 막힌 것이죠. 휘종이 아악을 만들어 놓고 보니까 이것이 기가 막혀서 혼자 듣기 아까워서 처음으로 휘종이 고려로 아악을 보냈어요. 이것이 12세기일 겁니다. 1116년 쯤 됩니다. 이렇게 휘종때 이 아악을 우리나라로 떡하니 보냈는데, 이때가 고려 때예요. 고려때 누구냐? '예종(睿宗)'때 입니다. 고려의 예종때, 휘종이 중국의 아악을 보내왔어요. 이 세상에 딱 그것 하나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그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에 아악이 있다는 것, 중국의 예악사상을 삼국시대때부터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굉장한 무엇이다 라고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레코드가 있었으면 '하나 보내주시오' 하면 간단히 끝났을텐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좋은 줄만 알지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휘종이 떡하니 이것을 보냈단 말입니다. 아악은 반드시 태고때의 음악이라야 되기 때문에, 태고때의 음악임을 보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악기가 있어요. 음악을 연주하는 도구인 악기라는 것은 음악의 기관(organ)이예요. 영어에서 악기학을 오르가놀로지(organology)라고 합니다. 악기는 기관이거든요. 이 악기를 보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악은 중국 태고 때 음악이기 때문에, 악기는 예외없이 중국 태고 때의 악기만 써야 합니다. 태고때가 아닌, 후세에 만들어진 악기로 아악을 연주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그리고 또하나 중국 태고때 악기는 절대로 고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가장 신성한 것인데, 어떻게 고치겠습니까? 절대로 고치면 안돼죠. 악기는 고칠 수도 없고, 그런다고 다른 악기를 쓸 수도 없고, 중국 태고 때의 악기, 즉 여러분들이 '예기(禮記)'를 읽을때 나오는 악기들이 있어요. 그것만 쓰는 겁니다. 그렇게 후대에 만들 수도, 개량할 수도 없는 악기를 '아악기'라고 그러는데, 이 악기로 다른 음악은 연주도 못해요. 원칙적으로 아악만 연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아악기를 대량으로 이때 우리나라에 보내주는데, 그 보내준 내력이 고려사에 세밀하게 다 실려 있습니다. 악기 종류와 이름까지도 실려있죠. 예를들면 편종(編鐘), 편경(編磬)이 나와요. 편종은 종 16개를 엮어서 달아 매놓은 겁니다. 편경은 소리나는 돌 16개를 엮어놓은 겁니다. 이것들이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종도 16개나 되고, 이것을 달아매는 틀도있고, 돌도... 조선조 때는 경을 운반하다가 깨뜨리면 곤장을 맞아요. 몇백대를. 그정도로 귀중한 것인데 이걸 무게로 따져도 어마어마한 분량이 되는 것을 중국에서 소 달구지에 싣고, 이 엄청난걸 우리나라 개성까지 보내준 겁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우리나라 임금이 중국 황제로부터 받은 선물 중에서 무게로 따져도 가장 무겁고, 값어치로 따져도 가장 큰거죠. 그래서 외교사를 연구하는 영국의 학자가 왜 악기를 보내줬느냐에 대해 논문쓴게 있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중국 역사책에는 전혀 이런 이야기가 나오질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고려사에는 세밀하게 나오거든요. 그 영국 학자의 논문의 결론에 의하면, 이것은 중국에서 한국에 '뇌물'로 보낸 것이다 라는 것이죠. 그러면 중국의 황제가 왜 뇌물을 보냈느냐? 그 당시 국제 정세를 분석해보니까 중국이 다른 오랑캐족을 견제하기 위하여 한국의 임금을 자기편으로 잡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것을 뇌물로 보내준 것이기 때문에 중국 문헌에는 실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떻든, 이 엄청난 것을 보내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때부터, 중국의 아악이라는 것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처지였는데, 이러한 것이 처음 왔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했느냐, 엄청나게 흥분을 한 것이죠. 이 천국에서나 연주할 만한 음악이 우리나라에 왔다 이것이죠. 그래가지고 그것으로 연주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흥분을 할 정도로 굉장한 기대를 했었죠.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들어보니까 아악이라는 것이 하나도 좋은 줄 모르겠어요, 하나도!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인데 하나도 좋은 줄 모르겠다 그 말입니다. 그럴적에 사람이란 어떻게 하느냐. 좋지 못하단 말을 입으로 할 수가 없는 거에요. 왜냐하면, 좋은 것을 어떻게 좋지 못하다 그럽니까.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 외국으로부터 굉장히 유명한 음악가가 옵니다. 신문지상에서 떠들고, 음악잡지에서 떠들고. 그래서 피아노 독주회를 했어요. 그래서 가보니까 하나도 좋은 줄 모르겠어요. 뭐 우리나라 대학생이 연주하는 것인지 뭔지 모르는데 자기는 돈 십만원을 내놓고 와서 나가다가 문간에서 자기 친구를 만납니다. "너 음악 어떻든?" 그러면 감히 "나 그것 하나도 모르겠고 뭐 대학생이 연주하는 것 같아." 라고 말할 수는 없죠. 그래서 할수없이 "야, 그것 기가 막히더라." 입에서는 기가 막히다 그러고 속으로는 하나도 좋은 줄 몰라요. 우리나라에 존 케이지가 왔을 때도 똑같았습니다. 존 케이지가 우리나라에 와가지고 한번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머스 커닝햄하고 공연을 했어요. 존 케이지는 세계에서 최고로 유명한 전위 음악가이고, 말하자면 백남준씨의 선생이에요. 그 존 케이지는 음악을 하고, 머스 커닝햄은 춤을 추었는데,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전위음악을 한다고 하니 관객이 미어터졌어요. 표가 완전 매진되었죠.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표를 사가지고 갔는데, 하나도 좋은 줄 몰라요. 그런데 누구에게 좋지 못하단 말을 할려니, 자기 무식한게 드러나고... 그래서 이게 골치아픈 이야긴데, 지금처럼 사람들이 자유분방한 시대에도 그러니 옛날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죠. 아악이 나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아악은 반드시 좋은 것인데, 그러나 들어서는 하나도 좋은 줄 몰라! 그러니까 어떻게 됐느냐, 예종때부터 이 아악을 궁정에서 연주를 하는데, 슬그머니 속악기를 섞기 시작해요. 한국사람 특유의 성질이 그렇습니다. 나쁘다고 하지 않고 슬그머니 아악을 변질을 시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 아악이 점점 변해 가지고, 이게 아악인지 아닌지 모르게 우물우물 내려와요. 이렇게 해서 어디까지 내려왔느냐 하면, 세종 때까지 내려왔어요. 그런데 세종이 아악공부를 했거든요. 특히 송나라의 채원정이라는 사람이 쓴 '율려신서'라는 책이 중국아악이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세종대왕이 이 율려신서를 강(講)을 받아요. 강을 받고 나니까 이론적으로 이게 굉장하거든요. 음악이 기가 막혀요. 아악이론은 우주론하고 겸해져 있습니다. 우주론과 겸해져 있기 때문에 굉장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세종대왕이 어떻게 생각했냐하면, '이 아악이라는 것이 굉장한 것인데, 지금 우리나라 궁정에서 연주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믿을 바가 못된다. 그래서 과거의 중국 황제들이 했던 것처럼, 즉 휘종이 우리나라에 보내줄적에 했던 것처럼, 바로 잡아라! 진짜 중국의 옛날 것을 만들어!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가짜야!' 그래가지고 다시 만들게 됩니다. 학자들이 중국 태고 때 요순시절의 음악을 찾을 수는 없고, 보통 태고라 하면 대체적으로 주(周)나라 때의 것을 찾게 되는 겁니다. 왜 주나라의 것을 찾을 수 있느냐 하면 문헌상으로 맥락이 닿을 수 있어요. 그래서 대개 중국 태고때 문화를 찾을 때에는 주대(周代)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이 주나라의 아악을 찾아라' 라고 된 겁니다. 그래가지고 연구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때 주동인물이 바로 박연입니다. 유명하죠. 그 박연이 죽어라고 노력을 해가지고 중국 태고 때 아악을 세종시대에 확립을 한 것이죠. 그때 가장 고심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어떻게 하면 중국 당나라, 송나라도 아니고 주대(周代)의 것을 찾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헌을 수백가지를 뒤지고, 별짓을 다하는데, 정말 기가 막하는 것은, 중국에 가서 물어보지를 않아요. 완전히 자력으로 우리나라에서, 악기도 우리나라에서 전부 만들기 시작해요. 그때부터 편종, 편경을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재료를 가지고 그야말로 '주체적으로' 우리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외국 것을 찾는 거지요. '주체적으로' 중국 것을, 중국의 옛날 것을 찾는데, 중국놈도 도저히 쫓아오질 못할 진짜를 찾는 겁니다.
그런데 제일 곤란한 것은, 다른 것은 다 되는데, 이론적인 것은 다 되는데, 음악 그 자체가 없어요! 악보가 없어요! 악보를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악보가 나오지를 않아요. 그래도 간신히, 그 나름대로 신통찮지만 믿을만한 것이 주자가 만든 '의례경전통해'라는 책인데 중국 시경의 악보가 있어요. 그것을 '시악(詩樂)'이라 그러죠. 주자의 책에 나오는 시악의 악보, 시경의 그 악보 밖에는 없어요. 그 전것은 있지 않아요. 주자는 그것을 어디서 얻었는지는 모르나, 그게 나오니까 그것에 의해서, 아악중에서 조회때 쓸것, 즉 일반의식이지요, 그 조회용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또 악보를 뒤져보니까 원나라의 임우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임우라는 사람이 공자제사 악보를 써 놓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마음에는 차지않지만 하는 수 없이, 그것을 가지고 제사용 음악을 만들어요. 조회용과 제사용을 만든 다음에, 그 만들게 된 내력과 원전, 즉 주자의 시악의 악보와 원나라 임우의 제사용 악보인 이 원전도 싣고, 어떠어떠해서 우리가 이 제사용, 조회용 음악을 만들었다는 그 자초지종을 전부 세종실록에 실었어요. 그리고 그 세종때 만든 악보도 전부 세종실록에 실어놓았어요. 그게 바로, 세종때 '아악의 부활', '아악의 정비'란 말로 역사책에 근사하게 나요지요. 박연이가 한 것이 이거예요. 별것 아니지요. 박연이가 뭐 대단한 음악가인줄 알지만 결국 아악찾는데 주동인물밖에는 안된거죠. 이렇게해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인 세종대왕이 아악을 만들었어요. 아니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 아악을 찾아냈어요.
그러면 그 후대 이것이 어떻게 됐느냐. 세종이 국력을 기울여서 해놓은 아악인데 들어보니까 하나도 좋지가 않다. 굉장히 위대한 음악인 줄은 알겠는데, 좋지가 않다. 그래서 현재 어떻게 됐느냐. 이 세종때의 조회용 음악은 현재 연주를 안해요. 없어졌어요. 제사용은 어떻게 됐느냐. 옛날에는 궁정에 제사가 많았거든요. 사직제도 지냈지, 또는 선장, 선농, 기우제도 지내고. 그러나 지금은 다 하지않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문묘제례악이에요. 성균관에서 하는... 그러니까 결론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지금 성균관에서 연주하는 '문묘제례악'은 진짜 순수한 의미의 아악이고, 이것은 동양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의 하나이면서, 가장 권위있는 본래 의미의 아악이에요. 왜 그러느냐. 중국 본토에서는 아악이 점점 변질되어 가지고, 역대마다 달라지니까 명나라, 청나라 내려올때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죠. 그것을 찾을 길이 완전히 없으니까 대만에서는 우리나라의 문묘와 국립국악원에 와서 이것을 배워가지고 가서 부활시켰어요. 모르는 사람은 대만에서 공자제사때 연주하는 음악이 우리나라 음악보다 정통이 아니냐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배워다가 중국화시킨 겁니다. 그것도 최근에 그런거예요. 20세기 후반에. 그러니까 그 나름대로라도 가장 믿을 수 있는 중국 태고 때의 음악은 우리나라의 문묘제례악 밖에 없어요.
일본은 어떻게 됐느냐. 일본에서는 아악이라는 말을 '강아꾸'라고 하는데, 사실 일본은 중국의 진짜 아악이 들어간 일도 없구요, 중국에서 보내줄 일도 없어요. 아악이라는 용어만 있어서, 그냥 궁정악을 일본에서는 막연히 아악이라고 그러죠. 후세적인 개념인 것이죠. 그래서 한국만이 중국에 가장 가까운 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중국에서 온 아악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악이라 그랬는데, 중국의 속악이 있다고 그랬죠. 이 중국의 속악을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당악(唐樂)'이라고 그래요. 이 당(唐)에서 조심할 것은 당나라의 음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중국이라는 뜻입니다. 당나라에서 왔건, 송나라에서 왔건, 어디서 왔건 중국에서 온 것은 당악이라 부르고, 우리 향토 지방에서 우리 스스로 만든 음악은 '향악'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우리 궁정음악이 아악, 당악, 향악으로 나눠졌어요. 이렇게 셋으로 나뉘어졌다는 것과 그 중에서 아악이 문묘제례악 딱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아악은 그런 뜻이 아니고, 궁정악을 통털어서 아악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묘제례악이 있는데, 종묘제례악은 뒤에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 다음에 여민락(與民樂)이 있는데, 이 여민락은 세종대왕때 용비어천가를 노래부르기 위해서 만들어진 곡이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는 다 탈락되어버리고 순수 기악곡화, 합주곡화 되어가지고 오늘날 연주되는 것입니다. 어떻든 그 근원은 세종대왕때로 두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어요. 그 다음에 수제천(壽薺天)이 있는데, 수제천이라는 곡의 속명(俗名)은 정읍(井邑)입니다. 이 속명이라는 것이 뭐냐. 예전에 우리나라 궁정악은 이름이 두개였어요. 하나는 아명(雅名)이고 또 하나는 속명(俗名)이 있어요. 왜 이름이 두개냐. 사람이 태어나면, 예를들어 부모님이 자기 자식을 이렇게 쳐다보니까 머리가 납작하다, 우리 자식은 머리가 납작한 것이 특징이니까 '넙치'라고 부르겠다, 또 어떤 집에서는 딸년을 낳으니까 대가리가 볼록하게 나왔어요. 그러니까 '짱구', 또 어떤 어린애는 유달리 입 양쪽에서 거품이 뽀골뽀골 해요. 그래서 '사이다' 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래가지고 그냥 그대로 쓰면 참 편해요. 그런데 소중한 자식을 그럴 수 있느냐, 그래서 옥편을 놓고, 또는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엉뚱하게 무슨 '영자'니, '영삼'이니 뭐니 한단 말입니다. 이름을 이상스럽게 한자로 지어놓으면 그 한자 이름하고 그 사람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거죠. 영자, 그러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나 '빼빼'라던가, '꺽다리' 라던가 하면 어떻게 생겼겠다 알 수가 있죠. 심지어 어떤 소설을 보면, 딸년을 낳는데 변소간에서 낳았다고 '똥녜'라고 이름을 붙여요. 똥녜, 그러면 아, 똥뚜간에서 낳았구나 하고 그 특징이 탁탁 오는데 그 대신 상스럽단 말입니다. 우리나라 궁정악에서, 대체로 속명이란, 그 곡의 특징에 따라 붙여 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아명은 그 곡하고 아무 관계도 없이 한문으로 요란하게 장식해서 붙여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수제천은 아명이고, 수제천의 원래 이름은 정읍이예요. 정읍인데 왜 정읍이라고 그러느냐, 백제시대의 정읍사(井邑詞)가 계속 변화해가지고, 천여년을 두고 변화해가지고 오늘날의 궁정악 중에서도 가장 많이 연주하는 이 수제천으로 된 겁니다. 따라서, '정읍'그러면 '아, 백제 시대의 정읍사에서 내려온 것이구나' 라고 그 나름대로 특징을 알 수가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궁정악을 보면 특징이 있어요. 예를들어 백제때 정읍사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이것을 백제때는 사(詞)라고 했어요. 그런데 후대로 죽 내려오면서, 고려때는 궁정악으로 채택되어 연주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려에서 다시 조선조로 내려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선생에게 배운대로 연주를 안해요. 자기 선생에게 그것을 배운 다음에 수십년 자기가 하면서, 자기 선생이 가르켜 준것에서 마음에 안드는 것은 없애고, 새로 집어넣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해서 제자에게 전해요. 그러면 또 제자가 자기 선생한테 배운 것을 그대로 안해요. 또 변화시킵니다.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계속 변화되어 내려옵니다. 그때는 이게 완전히 민요예요. 아녀자들이 부르는 민요. 그 민요가 천여년을 두고 내려와서는 오늘날의 국립국악원 악사들이 연주하는 그 장엄한 '정읍'이 되어버렸죠. 가사는 물론 없습니다. 그것을 아명으로 수제천이라 합니다. 그러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느냐, 수제천은 어느 시대때 곡이냐 하는 겁니다. 그건 딱 잘라 말할 수 없어요. 누구 작곡도 없고 그냥 그렇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궁정음악은-여민락(與民樂)도 똑같은데- 그 근원을 어느정도 아는 것들이 있으나 옛날 것과 지금 것이 전혀 다른 것이죠. 계속 변화되어 내려오기 때문에, 우리나라 음악은 17세기 음악은 어떻고, 18세기 음악은 어떻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예요. 곡 하나속에 연륜 전체가 다 붙어 있는 거여요. 이 곡이 백여년, 천여년을 두고, 계속 손때가 붙어 내려왔기 때문에 어느 개인의 창의력에 의한 것이다 라고는 할 수는 없죠. 예를 들어, 여러분이 쓰고 있는 책상을, 여러분의 후배가 쓰고, 또 쓰고 해서 천년쯤 써 보아요. 천년쯤 쓰면, 그 책상이 닳어가지고, 상처도 나고, 빛깔도 이상야릇해져 가지고 그 자체가 '예술품'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예술품의 빛깔을 누가 만든거냐, 어느 개인이 만들었다기 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었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의도가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음악들은 대체로 '자연의 미'가 들어가요. 자연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사람도 자연'이예요. 거기에는 자연의 미가 들어가 있고, 그 다음에 '연륜의 미'가 들어가 있어요. 오랜 세월을 겪은 그것! 그래서 인공적인 것은 아무리 좋은 것도 개인이 창작한 것은 유치한 데가 있어요. 그런데 자연이 만들어낸 것은 별로 좋지않다 하더라도, 유치한 것은 없죠. 여러분들이 바람이 부는데 '왜 바람이 저렇게 유치하게 불어?' 또, 꽃이 피는데 그 꽃을 보구선 '꽃모양이 유치하구먼...' 하지는 않아요. 그것이 별로 좋지는 않아도 유치한 것은 없거든요. 그러나 기가 막히게 잘 세운 63빌딩을 보건, 유엔본부빌딩을 보건, 인간이 해놓은 것은 유치한 데가 있어요. 아무리 위대한 것도, 베토벤의 음악도 유치한 데가 있거든요. 우리나라 음악을 들으면 자연이 그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유치한 것이 없어요. 즉 아무리 들어도 좋지 않을른지도 모르지만, 물리지도 않아요. 그냥, 그냥 매일 밥먹는 것 모냥 그렇게 먹는 것이죠.
그 다음에 표정만방(表正萬方)이라는 것이 88올림픽때 연주되었기 때문에 유명해져서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뜻은 굉장히 좋아요. '정의를 만방에 표한다.' 그런데 곡 자체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입니다. 속명은 삼현영산회상(三絃 靈山會相)이라는 것인데, 왜 삼현영산회상이냐 하면, 삼현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관악(管樂)이라는 의미예요. 이상스럽게 한자로는 현(絃)자가 들어가는데 관악이예요. 삼현을 왜 관악이라고 하느냐면, 관악합주를 보고 삼현육각(三絃六角)이라고 쓰는데, 이 삼현육각은 쓰는 한자의 뜻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삼현이란 관(管)이란 뜻이고 육각은 여섯사람이란 뜻이에요. 여러분들이 옛날의 풍속도를 보면, 관악은 주로 무용반주에 씁니다. 김홍도라든가 신윤복의 춤추는 그림을 보면 악사들이 반주를 하고 있는데 그 반주자들의 숫자를 세보면 여섯일 겁니다. 피리가 둘, 그 다음에 대금이 하나, 해금 하나, 장구 하나, 북 하나 이렇게 해서 전부 세어보면 여섯사람이에요. 이런 편성을 보고 삼현육각이라고 해요. 그래서 삼현영산회상, 관악으로 연주하는 영산회상이다 이겁니다. 영산회상이 어떤 곡이냐 하는 것은 뒤로 미루겠습니다.
그 다음에 대취타(大吹打)가 있습니다. 취(吹)라는 것은 분다는 말이고, 타(打)라는 것은 때린다는 말입니다. 불고 때린다는 것은 뭐냐, 행진곡입니다. 서양에서도 행진곡은 거의가 부는 것, 때리는 것으로 되어있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바이올린 연주하면서 군악대가 걸어가는 것 보셨어요? 바이올린은 그런대로 연주한다 하더라도, 첼로를 어떻게 걸어가면서 연주합니까. 그러므로 걸어가면서 하는 음악은 부는 것 아니면 때리는 것, 즉 '취타'입니다. 그래서 대취타라고 하고 이것이 옛 군악이죠. 지금도 대취타 악대가 육군본부에 있어요. 그래서 국악하는 사람은 군대가면 여기에 들어가죠. 지금 이생강이다, 누구다 전부 육군본부 취타대 출신이에요.
(2)민간악: 正樂
민간에서는 어떻게 했느냐, 상층사회의 민간입니다. 선비들은 음악을 왜 했느냐. '콘서트'하기위해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고 집안에서 무슨 예하기 위해 한것도 아니고... 그러면 왜 했느냐, 백퍼센트 자기 심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한 것이죠. 선비들이 음악을 한 목적은 양성정(養性情)입니다. 성정을 기르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선비들은 어떻게 해야 인간의 성정을 기를 수 있느냐 했을때, 대 자연에 동화하는 것이 최고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벼슬을 할 때에는 벼슬이지만, 관복벗고 나가면 선비예요. 예전의 양반들은 직업이, 말하자면 선비예요. 시골에 가서 자연속에 파묻혀 가지고 주로 사랑방에서 많이 연주하였습니다. 자기 성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 그것이 결국 대자연과 동화하는 생활과 연결이 된다해서는, 자기네 하는 음악을 풍류(風流)라고 했습니다. 바람과 시냇물, 풍류라는 말이 여러뜻이 있지만 음악적으로 쓸적에는 '자연이다', 또는 '자연스러운 음악이다' 라는 의미로 쓰죠. 그래서 음악가를 풍류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연주를 하는 것은 자기 개인적인 일, 사생활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사생활을 누구한테 공개하는 것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싫어하는 성질이 있어요. 예를들면 자기가 개인적으로 써놓은 일기를 어머니가 몰래 책상을 열고보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기분 나쁠 것도 없는데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또 어떤 연극배우가 무대에서 연기할 적에는 여러 사람이 쳐다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기 개인적으로 진짜 자기 사생활로 어떤 여자하고 키스를 한다, 이럴때 누가 들창 너머로 쳐다보면 기분이 좋지 않죠. 더군다나 변소에서 똥누고 있는데 누가 문열고 쳐다보면서 빙긋이 웃는다... 그럴적에 '자기 똥눗는 것쯤 보여주면 어때. 그것 상관없는 것인데. 더군다나 자기 똥빛깔이 황금빛이 나면 더 자랑스럽게 보여줘도 괜찮으련만'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시 아주 불쾌하게 여긴단 말입니다. 예전 선비들은 음악을 하다가 누가 바깥에서 엿들을것 같으면 안해요. 요즘 콘서트에서 박수치면 좋아라하는 음악가와는 완전히 반대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자기 사생활로 음악을 하니까, 음악소리가 작은 것을 더 좋아했죠. 이 사람들, 양반들이 실질적으로 연주하던 악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 가야금이 아니고 거문고예요. 그래서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그래요. 이때 악(樂)이라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악기라는 뜻입니다. 백가지 악기, 즉 모든 악기 중에서 어른이다, 이것을 거문고로 봐요. 우리나라에서도 옛시조를 보면 거의가 다 거문고에 관한 것이지 가야금에 관한 시조는 딱 하나밖에 없어요. 윤선도 시조, 그 밖의 나머지는 전부 거문고에 관한 거예요. 이 선비들은 자연과 동화하기 위해 음악을 한다는 겁니다. 그 어떤 아취, 음풍농월하는 그러한 아취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음악이 조용하고, 명상적이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던 대표적인 곡의 이름이 영산회상(靈山會相)이에요. 거문고로 타는 기악곡입니다. 영산회상이라는 말은, 스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상(相)자가 윗 상(上)자로 써야 된다고 하던데... 음악가들은 요즘 상(相)으로 굳어졌죠, 틀렸건 맞았건. 그러니까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上弗著살)인데 글자들의 수를 세어보면 일곱자예요. 불교시대였던 고려시대때 이것은 성악곡이었어요. 성악곡이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영산회상 불보살 일곱자를 자꾸 반복하던 가사가 탈락되버리고 순수 기악곡이 되어서, 이것이 상영산(上靈山)이라는 곡이 된겁니다. 그 다음에 이 상영산에다가 약간 변화시킨 곡을 붙였어요. 이것이 중(中)령산, 이것을 또 변화시킨 것을 붙여주고... 이런 식으로 쭉 나가서 맨 나중에 군악으로 끝나는데, 전체 숫자가 아홉곡이에요. 이것이 맨 마지막 군악까지 되려면 조선조 후기까지 내려와야되요. 이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영산회상이라는 곡이 완성되어가지고, 예전의 선비들은 의례 음악을 연주한다하면 영산회상을 연주하는 것이죠. 그런데 조선이 유교사회고 선비사회인데, 이상스럽게도 이 이름은 불교에서 왔어요. 이게 바로 한국적이죠. 말하자면 사서삼경 같은데서 이름을 하나 따와도 되련만, 불교에서 따온 것이죠. 그러나 현재 영산회상이라는 것은 말만 불교적이지 완전히 선비들의 풍류예요. 이 영산회상을 사랑방에서 연주하는데, 선비들은 현악만 해요. 거문고, 아니면 가야금, 양금 등. 그러면 이 영산회상을 연주하는데 관악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냐. 그것은 직업적인 음악가들이 합니다. 직업적인 음악가들 이라는 것은 쟁이고, 쟁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상놈이죠. 이런 식으로 연주를 하니까, 느린곡일수록 더 알아주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거문고로 느린 곡을 연주할 적에는, 예를 들면 '둥-, 둥-' 하고 천천히 가끔가다 뜯어요. 앉아서 뜯으면 어떻게 되느냐. 맨처음 거문고가 '설키당-' 하면 관악하는 사람, 즉 부는 놈은 '이-히- 히이-'하고 계속 불고 있어야 하니까 이놈은 힘이들어 얼굴이 시뻘개져 가지고, 그래도 죽어라고 불거든요. 이렇게 관악하는 놈은 젖먹던 힘까지 다해 죽어라고 불면, 양반은 가만히 앉아서는 '덩- ' 한번 튕기고는 딴데 쳐다보죠. 이런 연극형태는 마치 예전 양반들이, 상놈들이 죽어라고 농사를 지으면 가을에 가서, 담뱃대 물고 '이거 내놔라-' 하는 것과 똑같해요. 남이 죽어라 불고 있으면 가끔 '둥- 둥-' 하고 이거 내거라는 거예요. 이래서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힘든 것은 안하거든요. 예전의 희랍에서도 똑같은 악기인데, 현하는 것은 양반이고, 입으로 부는 것, 즉 관(管)이라는 것은 상놈이 했어요. 왜냐하면 관이라는 것은 육체적인 힘을 필요로 해요. 또 게다가 얼굴이 시뻘개진다든가, 목에 힘줄이 돋는다든가 해서 이것은 상스럽거든요. 그래서 서양에서도 현을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관을 상스럽게 생각하는 그런 감이 없지 않아요.
그 다음에 양반들이 좋아하던 노래가 있어요. 정가(正歌)라고 그러는데 정악의 바를 정(正)자를 씁니다. 이 정가에서 중요한 것이 가곡(歌曲), 가사(歌詞), 시조(詩調)입니다. 가곡하고 시조는 둘이 똑같이 '시조시'만을 사용하는 거예요. 즉 사설로 사용합니다. 그러면 시조와 시조시의 시조와 햇갈리죠. 가곡하고 시조는 시조를 쓴다. 그래서 국악하는 사람들은 흔히 음악으로서 시조를 이야기할 때는 창(唱)이라는 말을 써요. 구별하기 위해서죠. 어쨌든, 가극이나 시조창이나 그 내용이 되는 것은 둘다 시조시를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전의 선비들은 시조시를 노래부를적에 어떻게 불렀는가 하면 시조로 부른 것이 아니고 가곡으로 불렀어요. 예를들면, 가곡을 부르려면 노래가사, 즉 사설이 필요하겠죠. 따라서 이 노래가사가 되는 시들을 외워둘 필요가 있고, 적어놓을 필요가 있죠. 그 적어놓은 것들이 전하는데 청구영언(靑丘永言)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청구라는 말은 푸른 언덕, 즉 '한국'이라는 소리이고, 영언이란 긴말, 즉 말을 길게 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노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나 노래를 부르지만 그것을 말로 설명해보라면 힘들겁니다. 노래라는 것이 딴게 아니예요. 말을 길게 빼면 노래예요. 어린이들은 선천적으로 예술성이 있어가지고 '너 어디있니' 그런걸 가지고 '너- 어-디- 있-니∼' 합니다. 또 대답할 때 '여-기∼' 그러면, 그것이 벌써 '음악'이예요. 즉 말을 길게 빼는 것이 음악, 노래다 이겁니다. 아주 쉬운 거지요. 그래서 청구영언이라는 것은 한국의 노래집이고, 음악의 가사집이지 그것이 시 읽을려고 만든 책이 아니예요. 가곡원류라는 책은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이름이 아주 '가곡'이니까. 그래서 청구영언이라는 책을 여러분들이 보면 시조들이 죽 나오는데, 그 시조를 분류해 놓은 것이 곡명에 따라 분류해 놓은 것입니다. 무슨 만대엽, 초수대엽이 어떻고, 중대엽이 어떻고, 이게 전부 곡의 이름이예요. 어떤 의미에서 청구영언은 음악가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가사집이죠. 그래서 가곡도 시조로 부르고, 시조창도 시조로 부르는데, 두개가 어떻게 다르냐 하면, 시조는 아주 약식으로 쉽고, 종류도 몇가지 안됩니다. 예전 선비들이 진짜 본격적으로 부른 것은 바로 '가곡'이에요. 그 반주가 영산회상 때와 똑같은데, 거문고가 중심이 된 악기편성을 하죠. 예전의 기생들이 유일하게 부르던 것이 바로 '가곡'이에요. 왜냐하면 예전의 기생은 선비들의 걸프랜드였고, 선비들과 취향이 통해야 되었죠. 그래서 선비들과 놀던 예전의 기생들은 민요나 판소리 같은 것은 부르지 않았어요. 그런 것 부르면 대뜸, 요새식으로 말하면, 제적되버리죠.
그리고 가사(歌詞)라는 것이 또 있어요. 한자로 歌辭가 아니예요. 가사는 4·4조를 바탕으로 하는,『송강가사』같은 우리 옛날 시가의 형식이죠. 우리들이 요즘 이야기하는 가사(歌詞)라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겠죠. 그 가사에는 열두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에를 들자면, 어부사(漁夫詞)와 양양가(襄陽歌)는 한시예요. 따라서 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가사와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죠. 왜냐, 한시를 쓰고 있으니까.
여기까지의 내용이 대체로 이야기 하는 상층사회의 음악인데, 예로서 시조를 한번 설명드려보겠습니다. 시조가 제일 쉽고 단순하죠. 아까 노래란 말을 길게 빼면 된다고 했죠. 자 '동창이 밝았느냐'를 가지고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시조에는 어단성장(語短聲長)이라는 것이 있어요. 노래를 부를적에 말은 빨리, 짧게 붙이고 소리는 길게 뺀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동- ' 하면 무슨 소린지 모르죠. 동이 어떻다는 거냐,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동창- '과 같이 동창을 빨리 붙여야, '아, 동쪽 창이구나'하고 알 수 있고, 그것을 알게한 이후에 길게 소리를 빼는 겁니다. '동창'을 빨리 붙이고 이것을 세박을 끌고, 그 다음에 두박자를 '이'를 붙이는 겁니다. 음악이란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예전의 대악(大樂)이나 대례(大禮), 즉 큰 음악이나 큰 예는 반드시 간단하고 쉬워야 돼요. 따라서 예전의 선비들은 음악을 아주 쉽게 생각했어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냥 말을 길게 빼면 돼요! 그러면 그림으로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그림1]
그림 A에서처럼 '동창'을 길게 빼면 노래가 됩니다. 그리고 '이'는 밑으로 내려오죠. 이렇게 '동창'하고 세박가다가 '이'에서 떨어져서 두박을 합니다. 그런데 음악이란 '소리의 선'인데, 선이 아주 자연스러워야 하겠죠. 대자연의 법칙과 그대로 들어맞아야 하는데 여기 '동창- '한 것과 뚝 떨어져서 '이- ' 한것이 소리가 똑같이 나면 안되죠. 왜 안되느냐 하면 에너지가, 즉 소리의 기운이 이렇게 '동창- '으로 죽 가다가 뚝 떨어졌으면, 떨어진 이것을 받아서 출렁거려야 옳다 이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림 A'처럼 이렇게 되요. 이렇게 해야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만약에 이것을 거꾸로 해서 B처럼 '동창- '을 떨고 '이-'를 떨지 않으면 말도 안되는 것이죠. 물이 죽 흐르다가 이렇게 밑으로 떨어지면, 파문이 일고 물방울도 튀듯이 그렇게 똑같이 되는 거예요. 이런 노래를 부를 적에는 서양음악을 부를때와는 전혀 느낌이 다를 겁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거예요. 서두를 것도 없고, 박자 맞추려고 요란떨것도 없어요. 그야말로 '대악'이죠. 그런데 여기서 조심할 것은 이 소리가 A'에서 반듯하게 이런 식으로 죽 빼다가 툭 떨어지죠. 그러면 낙상을 하는 겁니다. 이 역시 부자연스러워요. 내려갈 적에는 무엇인가가 달라져야겠죠. 따라서 '동창- '으로 죽 나갈 때에는 힘이 반대로 약간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돌을 저리로 던지려면, 이 돌을 쥔 손이 던지려는 반대방향으로 잠시 물러섰다가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닭이 횃대에 오를 때에도 점프하기 전에 몸을 한번 움츠렸다가 뛰거든요. 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따라서 떨어지려면 떨어지는 준비가 되야겠죠. 그래서 그림 C와 같이 '동창- '의 끝이 잠시 올라갔다가 떨어져야 자연스럽습니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해서 이것을 자꾸 부르는 겁니다. 자꾸 부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점점 붓글씨 쓰는 것과 똑같아요. 붓글씨도 한일자(一) 하나를 쓰는데도 이것을 한번쓰고 마는게 아니라, 일년도 쓰고, 이년도 쓰고, 십년도 쓰면 형체가 점점 묘해져요. 그래서 추사가 한번 딱 쓰면, 벌써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어요. 한 획 속에 힘도 들어가 있고, 다 들어가 있어요. 그와같이 이것도 자꾸하면 점점 묘해져요. 그래가지고 마치 우리가 돌을 저리로 던질 때 휙 던지면 되지만, 잘 던지려고 손을 여러번 흔들다 던지듯이, 그와 똑같이 '동창- '을 할 때 그림 C처럼 한번 올라가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떨다가 아래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이 저 사람은 오랜 세월을 두고, '정말 공들여서 익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붓글씨와 똑같이 그것에서 '공력(功力)'을 느껴요. 그래서 우리나라 음악에서는 누가 연주할 적에 느끼는 것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공력입니다. 공력을 그대로 아름다움으로 봐요.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를 때, '아, 선생님, 목소리가 참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매끈하게 잘 부르십니까?' 라고 하다가는 따귀맞아요. 그렇게 남이 듣기 좋게 알록달록 부르는 것을 '노랑목 쓴다.'고 그러죠. 판소리는 민속악인데도 노랑목 쓰면 그것을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민속악이든 어디든 간에 누구의 연주나 노래하는 것을 듣고서 '어, 선생님 공력이 대단하십니다.' 라고 하면 이것이 최고의 찬사입니다. 공력으로 평가되는거지 이쁘고, 목소리 잘 놀리고 하는 것으로 되는게 아니죠. 추사의 글씨도 마찬가지 입니다. 추사의 글씨가 이쁘지를 않죠. 그야말로 공력이 대단해서 거기에서 힘을 느끼죠. 붓글씨도 잘 쓴 글씨를 보고 아름답다던가, 이쁘다던가, 매끈하다던가 하지를 않고, 힘이 대단하다 그러죠. 그와 마찬가지로 목소리건, 가야금이건 '힘'이 궁극이고 최고의 이상입니다. 그러나 이 '힘'이라는 것이 물론 완력은 아니죠, 그러면 완력이 아니고 뭐냐? 생명력이죠, 생명력! 생명력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음악은 궁극적으로, 미학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생명력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흔히 우리나라 음악을 들으면 '슬픈것이 많다.' 또 '한이 중요하다.'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음악이 슬픈것이 많고, 한이 서린게 많고 한 것이 사실이예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음악이 단지 슬프고, 한스럽고 하는데서만 머무르지를 않아요, 그것을 머금고 궁극적으로 나타낼려고 하는 것이 생명력이죠. 생명의 희열,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는 기쁨, 그것을 나타내되, 한을 '머금을' 수 있죠. 오히려 한을 머금으면 더 잘 나타낼 수 있어요. 인생을 살다보면 진짜 큰 기쁨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런 엄청난 기쁨을 느낄 적에는 어떻게 되는냐, 눈물부터 쏟아집니다. 슬픔을 머금지 않은 기쁨은 가짜예요. 하다못해, 올림픽때 금메달만 따도 울고, 이산가족이 만났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죠. 슬픔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희열때문에 우는 거죠. 우리나라 음악을 들어보면 아무리 슬픈 음악에서도 희열이 넘쳐 흐르죠. 그리고, 소리라든가, 장단이라든가 모든것에서 추구하는 것은 힘을 추구하죠. 어떻게 하면 힘을 나타내는냐 이것입니다. 시조는 이렇게 되는데, 가곡은 진짜 양반이 하는 것이라 했죠. 왜 가곡은 예를 들지 않느냐하면, 가곡은 너무 복잡해요. '동창이'를 부를 적에 시조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고, 그 소리의 변화가 복잡합니다. 그래서, 이전에 돈화문 있죠, 비원 말입니다. 그 돈화문 앞에서 사는 어떤 사람이 가곡을 부르는데 "아--" 하는 소리를 듣고 동대문 시장에 갔다 왔더니, 그때까지 "아--"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가곡을 진짜 알면 시조는 싱거워서 못 불러요. 그렇기 때문에 민속악하는 사람은 시조를 하지만, 선비들은 가곡을 자기네 최고의 음악으로 쳤던 것이죠. 시조는 장구같은 간단한 악기로 반주하고 무릎장단을 치기도 하지만 가곡은 반드시 관현악 반주가 들어가고, 시조는 전주곡·간주곡이 없는데, 가곡은 전주곡, 간주곡도 들어갑니다.
3. 기층사회의 음악: 민속악
예전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서 지방마다 말도 다르고, 사회도 약간 달랐는데, 민속악에서 뭍에서 연주하는 것은 크게 셋으로 나눠요, 경기, 서도 그리고 남도 이와 같이 나눕니다. 경기와 서도는 달라도 꽤 통해요, 그래서 경기악하는 사람이 서도악하고, 서도악 하는 사람이 경기악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남도악은 절대로 안돼요, 오늘날 민요를 아무리 잘부르는 사람도, 경기, 서도를 겸해서 부를 수는 있어도, 남도악까지 겸해서는 못 불러요. 남도악 부르는 사람은 따로 있어요. 경기악은 경기지방이 당연히 중심이 되고, 서도는 황해도, 평안도 이고, 남도는 중심이 호남입니다. 세계적으로 보통 민속악, 즉 포크 뮤직(folk music)하면 노래가 중심이 되지만, 이 남도에는 기악도 발달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악과 기악을 나누었는데, 성악에는 민요, 잡가, 판소리가 있어요.
잡가는 원래는 민요와 확연히 구별되는 것은 아닌데, 흔히 이 직업적인 소리꾼의 노래를 잡가라고 하는 경향이 많아요. 남도의 직업적 소리꾼들이 잡가에 만족하지를 않고, 장편의 극적인 소리를 발달시킨 것, 그것이 '판소리'지요. 판소리에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예전에는 열두가지가 있었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해서 다섯가지가 남아있죠. 이중에서 다른 것은 다들 아시는데 적벽가 모르시는 분들이 더러 있조. 적벽가는 삼국지 이야기예요. 삼국지 이야기를 왜 적벽가라 그러느냐, 삼국지를 전부이야기 할 수는 없고, 삼국지 중에서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적벽가라 합니다. 그리고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완전히 패해가지고 도망가는 길 이름이 화용도 거든요. 그래서 적벽가를 화용도라고도 부릅니다. 그 길에서 관우를 만나서 용서받는 것으로 대개 적벽가는 끝납니다.
그 다음에, 단가가 있읍니다. 판소리 부르는 사람이 대뜸 판소리 시작하면 멋대가리가 없기때문에, 판소리를 시작하기전에, 간단한 판소리와 아무관계도 없는 간단한 서정적인 노래를 한마디 부르죠. 이것을 '단가'라 그럽니다. 단가를 부른 다음에 판소리하는 것이 원칙이죠.
'병창'은, 자기가 노래하면서 자기가 악기로 반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로 가야금이 되기 때문에 가야금 병창이 주가 되지만, 거문고 병창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관악기로는 병창을 할 수가 없죠. 자기가 노래부르며 피리불고 반주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다음에 기악으로서, 산조가 있는데, '산조'란 독주곡 형식의 이름입니다. 산조는 나타난지가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19세기 말에 나타난 것으로 국악의 입장에서 보면 비교적 현대에 나타난 것이죠. 산조란 판소리에서 영향을 받아 기악곡화된 독주곡의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이것은 형식의 이름이기 때문에, 서양음악에서 형식의 이름으로 유명한 소나타가 이^ㅆ는 것처럼, 악기마다 전부 산조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바이올린 소나타, 피아노 소나타 하는 것처럼, 가야금 산조, 거문고 산조, 피리 산조, 대국 산조 등등... 그 악기로서 산조형식의 곡을 연주하면 그것이 되는 것이고, 똑같은 가야금 산조에도 함동정월류, 김죽파류, 김윤덕류하고 하는 것은, 똑같은 피아노 소나타에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하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독주곡의 형식이지만 장구로는 반주를 합니다.
그리고 '시나위'가 있읍니다. 시나위는 산조와 반대로 '합주곡'의 형식이예요, 그런데 어떤 합주인가 하면, 시나위는 즉흥합주예요, 연주하는 순간에 곡을 만들면서 동시에 연주한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이 시나위를 들으면 흔히들 '재즈'같다고 합니다. 이것은 즉흥합주곡으로 본래는 무당의 살풀이 춤의 반주음악 이예요.
그다음에 농악이 있읍니다. 우리나라가 농업국가이기 때문에 농악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농악은 '풍물놀이'를 말하는 겁니다. 풍물이란 농악에 사용하는 타악기들을 말합니다. 꽤가리, 장구, 북, 징 이네가지가 사물(四物)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이 농악으로서 하던 사물, 즉 가장 중요한 타악기들을 현대 콘서트 형식으로 바꾸어 놓은 사람이 '김덕수'예요. 김덕수가 78년에 공간사랑에서 콘서트용으로 이것을 해서 성공을 거둔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사물놀이가 이렇게 많이 퍼졌죠. 원래는 그냥 농악이고 풍물놀이었죠.
4. 사찰의 음악
그리고 사찰의 음악이 있읍니다. 사찰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그 지위가 달랐읍니다. 조선조때 중은 7천인 중의 하나인 하류계급으로 취급받았다고도 합니다. 어떻든, 이 사찰이란 세속적인 상층사회도 아니고, 기층사회도 아니고, 산속에 따로 떨어져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독특한 음악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이 '염불'입니다. 목탁을 친다던가, 요령을 흔든다던가, 때로는 작은 종을 치기도 하죠. 스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염불이죠. 이것도 충분한 음악입니다. 그다음에 '범패(梵唄)'가 있어요. 범패는 절에서 재(齋)를 올릴때 하는 것입니다. 구경을 해 보신 분들은 금방 알겠지만, 카톨릭 식으로 하면 미사올리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이 재를 올릴때 부르는데, 이 범패는 범패승이라고 해서 이것을 부를 줄 아는 스님들이 따로 있어요. 저 봉원사가 유명하죠. 인간문화재이신 박송암 스님이 계십니다. 여기에서 범패는 춤과 더불어 함께 연주되는데, 그 재에서 춤은 크게 셋으로 나뉩니다. 바라치면서 하는 '바라춤'이 있죠, 바라는 일종의 심벌즈같은 것입니다. 또 '나비춤'이 있는데, 양쪽손에 연꽃을 들고 손을 벌린채 하늘거리면서 나비처럼 춤추는 것이죠. 그리고 '법고춤'이라해서 북을 치면서 추는 춤이 있읍니다. 이렇게 절에서 추는 춤을 보고 작법(作法)이라 합니다. 작법은 춤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이 작법의 주가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인 것이죠. 이 중에서 법고춤이 세속화 된것이 승무예요. 승무는 본래 스님의 춤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무용인데, 법고춤에서 영향받아 만들어진 것이죠. 그리고 한가지 조심할 것은 농악의 사물놀이가 있지만, 사찰의 사물이 있어요. 사찰의 사물은 북, 대종 (또는 범종이라고도 함), 그리고 목어(木漁), 운판(雲版)이 있읍니다. '목어'는 나무로 물고기처럼 만들어 그 속에 채를 넣고서 흔들어 치는 것이고, 운판은 쇠판인데 그 가장자리 모양이 구름처럼 되어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북'은 대지를 상징하는 것이고 '종'은 명부(冥府)즉 피안의 세계죠, 저쪽 죽음 너머의 세계. 그리고 목어는 바다, 운판은 하늘입니다. 그래서 예불할 적마다 이것으로 연주를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이 크게 국악을 대체적으로 나누어 본 것입니다.
5. 가곡, 잡가, 남도악
앞에서 설명하지 않은 것이 몇가지 있었읍니다. 흔히 국악하는 사람들은 '가곡'과 민속악의 성악곡인 '판소리', 그리고 절간에서 부르는 범패, 이 세가지를 우리나라음악의 삼대성악(三大聲樂)이라고 합니다.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가곡은 상층사회 노래의 극치이고, 판소리는 기층사회 성악의 극치, 범패는 불교음악 중 성악곡의 극치다 하는 것입니다.
가곡에는 남녀창의 구분이 있어요, 즉 가곡은 남창이 따로 있고, 여창이 따로 있읍니다. 남자가 부를 노래, 여자가 부를 노래가 따로 정해져 있고, 노래도 곡조도 다릅니다. 이름이 똑같더라도 남창과 여창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원래는 남자가 한마디 부르면, 여자가 따라부르고, 이렇게 주고 받고, 주고 받고 하다가 맨 마지막 끝날때는 합창으로 끝납니다. 그 합창곡 이름을 '태평가(太平歌)'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민요에도 태평가가 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요새 서양음악에서 가곡이라는 말을 많이 쓰죠, 홍난파가곡이 어떡고, 김동진 가곡이 어떻고..., 그것은 일본의 명치유신시절에 독일의 리트(Lied)라는 말을 일본인들이 번역해서 한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예날부터 쓰던 가곡과는 말할 것도 없이 아무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잡가'를 직업적인 소리꾼의 노래라고 했었죠. 경기에서는 유달리 잡가를 중요시합니다. 경기의 직업적 소리꾼들은 자기들이 잡가를 부른다는 데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진짜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은 잡가를 듣는다 라고 하죠. 보통은 민요를 듣고 부르지만.... 그런데 여기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어요. '긴잡가'와 '휘몰이 잡가'가 있죠. 긴잡가의 길다는 뜻은 느리다는 뜻이예요. 느리다는 말을 흔히 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휘몰이'란 휘몰아 친다, 즉 빠른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느린잡가와 빠른 잡가 두가지가 있는데, 이중에서도 긴잡가를 최고로 칩니다. 이 긴잡가의 가사, 사설시를 보면 아주 세련된 것이 많아요, 가장 대표적인 곡이 '유산가(遊山歌)'입니다. '화란춘성하고 만화방창이다, 때좋다 봄님네야, 산천경개 구경가자' 이렇게 나오는 것인데, 이전에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나왔었죠. 노래의 내용도 상당히 선비취향이고, 한자도 많이 나오는 것이 수준이 높습니다. 그러한 긴 잡가가 12가지가 있읍니다. 가사(歌詞)에도 12가지가 있어서 '12가사'라고 하는데, 잡가꾼들도 여기에 맞추고 싶어서인지, '12잡가'를 만들었습니다. 휘몰이 잡가는 그 사람들이 별로 중요시 하지 않아요. 휘몰이 잡가는 대개 내용이 익살스럽고 해학적이죠, 그에비해 12잡가는 내용이 상당히 품위있는 것이 많아요. 그런데 어떻든, 경기에서 잡가는 방에서 앉아서 부릅니다. 이것을 앉은 소리 라고도 하고 좌창이라고도 합니다. 노래란 앉아서도 부르고, 서서도 부를 수가 있는데 왜 굳이 앉아서 부른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예전의 경기지방은 서민이 농사도 짓고 살았지만 '장인(匠人)'으로도 많이 먹고 살았거든요, 예를 들어 갓을 만든다거나, 놋그릇을 만든다거나, 옷감에다 물을 들인다거나 하는 등등말입니다. 이러한 장인들은 주로 앉아서 일을 해요. 앉아서 손을 꼬무락 꼬무락하면서 뭐를 하는데 하루종일 이렇게 하면 입이 심심하다 이겁니다. 그래서 입으로 읊는다는죠. 그런데 사람이란 묘해서, 대개 여남은 사람만 무작위로 뽑아서 노래를 시켜보면, 꼭 노래 잘하는 사람이 껴요, 이상스럽게도.... 물론 음치도 하나정도 끼죠. 그런데 서울 변두리 지방에서는 가을에 김장까지 끝난 뒤에는, 배추밭이었던 자리에 땅을 파고서 공청(空廳)을 만들어요, 공동사랑방이죠. 땅을 조금 우뚝하게 파가지고 그 위에다가 집을 그럴듯하게 크게 짓는데, 밖에서 보면 허스름하죠.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도배도하고 해서 아주 잘해 놓아요. 이것을 깊은 사랑방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것이죠. 김장까지 끝나고 나면 동네 사람들이 여기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 중에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서 노래부르고 하다가 이것이 알려지면, 선비들에게 불려가서 노래부르기도 하고, 조선조 말에는 궁에까지 불려가는 수가 있어요. 그렇게 해서, 임금 앞에서 노래부르기도 하죠. 그렇게 되면, 임금이 벼슬을 줍니다. 대개 경기의 직업적 소리꾼들에게는 별감자리를 줍니다. 노래를 잘하는 녀석이다 해서 '가무별감'이라고 하죠. 그러면 이 사람을 중심으로 이런 음악들이 발달합니다. 그뒤 일제시대로 넘어오면, 기생들한테 스승이 되어 가르치고, '권번(券番)선생'으로 나가고 그럽니다.
이렇게 앉아서 부르는 것 말고 서서 부르는 것이 있어요. 이것은 야외에서 부릅니다. 다리밟기를 한다든가, 놀이도 하면서 부르는데, 이러한 것을 '선타령'이라 합니다. 이것은 가사의 내용이 거의 모두 산을 예찬하는 것으로 되어있고, 음악은 굉장히 씩씩해요. 이것은 '입창' 또는 '선소리'라고도 하는데, 방안에서 부르는 좌창과는 판이하게 달라요. 방안에서 부르는 것은 아주 장식적이고 경기사람 특유의 화사한 점이 있는데, 선소리는 농악할 때처럼 소고를 손에들고 춤도 추면서 씩씩하고 우렁차게 합니다. 넓은 의미로 선소리도 잡가인데, 어떤 국악책에서는 잡가, 선소리를 구별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서도에서는 민요, 잡가가 거의 경기에 준합니다. 서도에도 잡가가 있고 선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도의 소리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남도의 가장 중요한 선율하나를 예를들어 소개하겠습니다. 계면조를 슬픈조라 하죠. 가장 토속적인 슬픈조예요. 이것은 소리를 크게 두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어요. 민속악에는 악보도 원래 없었고, 이론도 원래 없었죠. 그래서 편의상 가야금 식으로 불러서 윗소리를 '징'이라 그러고 아랫소리를 '당'이라 하겠어요. 징은 '징- '하면서 죽 나가는 소리고, 당은 '당∼ '하면서 떠는 소리인데 아까 시조처럼 떨면 안됩니다. 민속적으로 정말 흙냄새가 나게끔, 한이 서린 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정악하고는 다릅니다. 이 두소리를 비교하면 '징- '소리는 높고 거의 떨지않는데, 떨더라도 아름답게 작게 떠는 것에 불과한 것이고, '당∼ ' 소리는 낮고 떠는 것 자체가 본질이에요. 이 두소리를 음양으로 비유할 수 있어요. 그러면 이 중에서 어떤 것이 음이고 양이겠습니까? 사람이라면 어느 것이 여자고, 어느 것이 남자냐 하는 말입니다. 음이 위에 있는 것일까요, 아래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렇게 하면 알 수 있습니다. '징- ' 하는 소리하고, '당∼ '하는 소리하고 어디서 힘을 더 느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당∼ '에서 느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징- '을 여자로, '당∼ '을 남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림2]
이 두소리는 음과 양으로 대립되어 있고, 뚝 떨어져 있어요. '징- '은 애절한 맛이 있고 '당∼ '은 무겁고 흔들리는 맛이 있죠. 그 다음에는 여기에 붙어가지고 나오는 소리가 있어요. 이 놈은 소리가 나올적에는 조금 높았다가 쑥 떨어지면서 내려와요. 이때 이 소리의 사이가 아주 좋아요. 이것을 '땅'이라고 하겠어요. 이 땅과 징 사이의 간격이 좁고, 이 '땅∼∼'의 소리가 '징- '으로 들어오려는 힘을 아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이 소리가 '땅∼ 징- '으로 돌아오면 안정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그림에서는 b로 표시되어 있어요. 이 놈은 이 사람들에게 지새끼라고 볼 수가 있어요. 우리나라의 시골 같은데서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새끼는 여자에 붙어 다녀요. 우물가에 가면 우물로 쫓아오고, 다락에 가면 다락으로 오고, 부엌에 가면 부엌으로 오고, 하루종일 쫓아 다닙니다. 그런데 사내녀석인 지애비는 뚝 떨어져 있죠. 그러면 슬픔이란 뭐냐. 여기 사람 하나가 있고, 저기에 사람하나가 있을 때,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가려고 하는 그 어떤 것을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슬픔'입니다. 어떤 떠꺼머리 총각이 동숭동에 사는데, 더벅머리 처녀는 마포에 있다 할때, 떠꺼머리와 더벅머리 하고 둘이 서로에게 가려는 마음에 없으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런데 가려는 마음이 생기면 거기서 슬픔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그런데 이 가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는 대상이 너무 허약해요. 그것이 또 다른데로 향하고 있으면 슬픔이 가중되요. 그래서 여기 소리가 하나 나오는데 그것이 D의 소리이고 그것을 '따앙'이라 하겠습니다. 이 '따앙'의 소리가 땅과 징의 소리를 향해 밑으로 내려옵니다. 빠르게 들어오죠. 이때 이 소리가 남도 계면조 중에서 가장 슬픈 소리가 됩니다. 이 소리들을 지새끼라고 하면 '땅'이라는 지새끼는 (그림C) 일곱, 여덟 먹은 아이라 할 수 있고, '따앙'이라는 지새끼는 [그림D] 한두살 먹어가지고 일곱 살짜리는 지어미를 찾고, 한두살 짜리는 일곱살 형을 찾고 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요. 남도 소리에서 판소리건 무엇이건 가장 슬픈 소리를 찾으면 바로 이것, '따앙'하는 소립니다. 슬플적에는 꼭 이소리를 쓰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죽은 자기 마누라를 찾을 때 '아이고 마누라- ' 하는 '라-'에서 바로 '따앙'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고추따고 장찍어 밥하면은 (C) , 맛있기도 하고 (D)- 하건마(B)는 (A) ' 이렇게 떠는 것이 아래 A까지 내려오는 것이죠. 자기 마누라가 죽었을 적에 고추따다 장찍어 밥하면 맛있기도 하건마는 지금 어디갔냐 그겁니다. 이렇게 해서 소리가 다 내려왔으면 들이 마시면서 우는 겁니다. 울적에도 아무데서나 흐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흐느끼는 장소가 있어요. 이와같은 소리들이 중심이 되어 발전한 것이 남도악이에요. 가령 진도아리랑 같은 것을 보면 '문경새재는-' 할 때 '는-'이 바로 그런 소리예요. 육자배기에서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죽어 초상나면, 곡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막 슬피 곡을 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와서 '형님, 고만좀 곡하소' 그러면 뚝 그치고 '음, 그래'하고는 안합니다. 그러면 젊은 사람들은 저 사람이 진심으로 우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의아해합니다. 울다가도 뚝 그치고 이야기하고, 웃다가도 가서 또 곡을 하고. 그것이 왜 그런가 하면 곡 하는 것이 순전히 우는 것이 아니거든요. 무엇이냐 하면 일종의 '장송곡'이에요. 노래부는 것이죠. 죽은 사람에 대하여 바치는 노래가 곡하는 것인데, 실제로 누가 죽었을 때 장송곡으로서, 곡하는 것보다 더 진솔한 것이 없어요. 거기에서 누가 가사를 지어서 피아노치면서 노래해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냥 울음소리로 우는 것, 그것이 가장 진솔하죠. 그래서 곡 잘하는 사람을 돈주고 사오는 것 아닙니까. 초상집에 울음이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은 장송곡이 그치면 안된다 정도로 이해하면 쉽죠. 그런데 바로 남도에 가면 정확하게 이렇게 울어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런데 주음은 여기 여자애가 있어요. 예를들어 서울 같은데서 어떤 집이 강제로 철거된다 할 때, 사내녀석은 창피하다고 도망가서는 다방에나 앉아서 히히덕 거리고 있고, 그래도 그 집은 여자가 지키죠. 물론 문패는 남자 문패지만... 그러면 그 딸내미나 아들내미, 지새끼들은 자기 어머니 치마폭만 잡고, 어머니에게 매달리면 되는 거에요. 지진이 나건, 집이 무너지건 상관없어요. 그냥 괜찮은 거예요. 그러니까 지새끼들은 어머니에 붙어있고, 사내녀석은 뚝 떨어져 있는 거죠. 그러면 사내가 필요없지 않느냐 하겠지만, 그러나 여자가 왜 힘을 갖습니까? 사내가 있기 때문에 힘을 갖죠. 여자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방에라도 남자가 앉아 있으니까 거기서 힘이나서 통곡도 하는 것이죠. 그래서 문패는 남자것을 붙이는 겁니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음악속에 잘 나타나 있어요. 이런 구조는 정악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6.종묘제례악
앞에서 국악의 전체적 내용과 민속악에 대하여 설명을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간단히 설명했던 종묘제례악을 예를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문묘제례악과 달리 종묘제례악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입니다. 세종대왕 때, 조상들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한 시와 음악, 무용을 많이 만들었느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125장으로 된 용비어천가입니다. 그 용비어천가가 변화된 것이 여민락(與民樂)이라는 말도 앞에서 했습니다. 그러면 세종당시의 역대 임금이란 도대체 뭐냐. 그것은 이태조의 고조할아버지서부터 시작합니다.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 여기까지 죽 내려오다가 그 다음이 이태조이고, 이상스럽게 정종은 빼버리고, 태종, 세종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목조에서 태종까지의 업적을 그린 것이 용비어천가인 것입니다. 또 조상들의 문치(文治)를 찬양해서 만든 것이 보태평(保太平)입니다. 그리고 역대 임금들의 무공(武功)을 찬양해서 만든 것이 정대업(定大業)입니다. 이렇게 보태평과 정대업 두곡을 만들어 용비어천가와 같이 가사도 만들고, 음악도 만들고, 여기에 맞추어 추는 춤도 만들었는데,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세조가 자기는 뭐를 하지 않고서는 꼭 중간에서 어찌어찌해서 고쳐요. 이렇게 해서 고치면 대개 성종때 완성되는 경향이 있죠. 세조가 세종이 만든 보태평과 정대업을 보고는, '이것을 종묘에서 연주하면 좋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세조때부터 보태평과 정대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을 한 것입니다. 이때 채택을 하는데, 그냥 채택한 것이 아니라 고쳐요. 고치는데 늘리지는 않고, 세종이 실컷 만들어 놓은 것을 제례절차에 맞게끔 솎아내서 줄입니다. 그때부터 종묘에서 연주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겁니다. 그래서 음악이 어떻게 됐느냐? 뼈다구는 그대로 있어요. 그러나 살은 변했죠. 우리나라 사람은 옛날 사람들이 연주하던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변했어요. 그래도 종묘제례악은 종교의식이기 때문에 보수성이 매우 강해서 함부로 고치 수 없기 때문에 비교적 덜 변한 겁니다. 연례악은 엄청나게 변했죠. 수제천이라든가 여민락 등은 굉장히 변했지만 종묘제례악은 비교적 변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세종때 부활시킨 문묘제례악은 비교적 변하지 않았어요. 종묘제례악에서 보태평과 정대업 모두 각각 작은 11곡 씩으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왜 11곡으로 되어있는가는 조금 뒤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제사지내는 절차를 간단히 말하면, 맨 처음이 영신(迎神)입니다. 신을 맞아들인 다음에 전폐(奠弊),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 철변두(徹邊豆), 송신(送神), 망료(望燎)의 순으로 이루어 집니다. 이 순서가 복잡해 보이지만, 상당히 논리적이고 간단해서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가 않아요. 예를들어 여러분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를 연상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맨처음 할 일은 문열고 맞아들이는 것이고, 그것이 '영신'입니다. 그 뒤에는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죠. 그것이 '전폐'입니다. 이 전(奠)자는 틀리기 쉽죠. 존(尊)이 아닌데 국악하는 분들 중에 이 전자의 밑을 마디 촌(寸)으로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 전폐라고 하는 것은 제대로 인사드리는 겁니다. 그런 뒤에는 그 손님을 대접하는데, 대접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술대접입니다. 술은 한번 권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딱 세번 권합니다. 따라서 '초헌', '아헌', '종헌'이라 하는 것이죠. 이때의 헌(獻)은 바친다는 뜻입니다. 이 술을 바치는데가 제사의 핵심이죠. 이것이 본 절차고 그 앞과 뒤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절차입니다. 이렇게 술을 대접하고는 '철변두', 즉 상을 물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변두(邊豆)라는 글자에는 모두 대나무(竹)가 있어요. 변두란 예전의 대나무로 만든 제사그릇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철(徹)은 물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을 물리고 난뒤에는 '송신(送神)'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다 끝났느냐, 하나만 남았어요. '망료'의 망은 바라보는 것이고, 료는 태운다는 말입니다 즉 축문을 태우는 것을 바라보는 절차가 마지막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초헌, 아헌, 종헌의 세가지 절차인데 이것이 세가지이므로 반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전체를 반으로 나눠야 하면, 초헌, 그리고 아헌, 종헌으로 나뉩니다. 왜냐하면 처음이 중요하니까 그렇습니다.
제사지낼때는 어떤 춤을 추느냐 하면, 반드시 줄을 맞추어서 추는 일무(佾舞)를 추게 되어 있어요. 『논어』에도 「팔일」편에 일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일무는 아무렇게나 서서는 안되고, 마치 군대처럼 네모반듯하게 맞추어 서서 추게 되있어요. 팔일무이면 가로로 8명, 세로로 8명해서 64명이 추게되고, 육일무이면 36명, 4일무이면 16명, 2일무이면 4명이 추게 되어 있죠. 천자 앞에서는 팔일무, 제후앞에서는 육일무, 사대부 앞에서는 4일무, 그리고 평범한 선비 앞에서는 이일무를 추도록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조때 종묘에서는 육일무 밖에는 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제후국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죠.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팔일무를 추면, 중국황제에게 선전포고하는 것과 똑같아요. 쳐들어오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 생각으로는 중국 황제에 대한 도전이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대한제국이후에서만 팔일무를 추고, 지금도 팔일무를 춥니다.
그런데 이 일무에는 두가지가 있어요. 문을 상징하는 춤과 무를 상징하는 춤입니다. 문을 상징할 때는 좌약우적(左약右翟)이라해서 왼손에는 약을 들고 바로 손에는 적을 들어요. 여기서 약이란 중국 태고 때의 악기예요. 우리나라의 단소처럼 생겨서, 대나무에 구멍을 세개 뚫은 것이죠. 이것은 구멍이 세개 밖에 없어서 조금 복잡한 것을 불려면 구멍을 어떤 때는 반도 막고, 반의 반도 막고 별짓을 다 해야되죠. 그러면 구멍을 몇개 더 뚫으면 되지 않느냐, 그러나 아악기는 불편해도 불편한대로 써야지 그것을 개량하다가는 큰일나는 것입니다. 고치면 안되죠. 못생기면 못생긴대로 해야죠. 이것은 문묘제례때 쓰는 악기인데 여기서는 이것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무용도구로 씁니다. 악(樂)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바른손에는 적(翟)을 들어요. 이 적은 꿩털로 장식한 술인데 예(禮)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무무(武舞)를 출적에는 좌간우척(左干右戚)이라해서 왼손에는 간(干)을 들고 오른손에는 척(戚)을 들죠. 이것들은 방패와 도끼로서, 무(武)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도끼를 들고 추니까 그 근처에 가면 목이 달아나지 않는냐 의심하겠지만, 그것은 모두 나무로 만든 상징물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례할적에 초헌까지는 문무를 추고, 아헌서부터는 무무를 춥니다. 그다음 철변두 이하는 춤이 없어요. 즉 춤은 종헌까지 하면 끝나요. 즉 영신, 전폐, 초헌 때는 문무를 추고, 아헌, 종헌 때 무무를 추는 겁니다. 그런데 앞에서 술을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했어요. 제사지내는 전체에서 최고자가 초헌을 하는데, 그 초헌관이 임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술잔을 바칠적에 어떻게 되는가 하면, 제일 처음에 술잔 바치러 걸어들어갈 때 연주하는 전주곡이 있고, 술잔을 바칠때 하는 중간의 진짜가 있고, 바치고 난뒤 물러날 때 하는 후주곡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가운데 곡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때는 무엇인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뭔지는 모르지만 아홉가지가 이루어져야 하므로 구변(九變)이라 합니다. 왜 아홉이냐, 이 아홉이라는 숫자가 가보(家寶)거든요. 이 숫자만큼 무엇인가 해야되요. 그래서 들어갈때 전주곡 하나바칠때 아홉, 바친뒤 물러날때 하나 해서 모두 11가지가 됩니다. 따라서 보태평과 정대업이 각각 11곡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초헌때 문을 상징하는 보태평 11곡 전곡을 연주하고, 아헌, 종헌 때 정대업 11곡을 각각 연주합니다. 그런데 이 보태평 중에서 첫번째 곡 이름이 '희문(熙文)'입니다. 이 희문을 한번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림3]
'열성개희운(列聖開熙運)'이란 '여러 성군께서 나라의 빛나는 문을 열어주시니'하는 뜻이겠죠. 그리고 '병울문치창(炳蔚文治昌)'에서 병울이라는 것은 찬란하다는 뜻입니다. '찬란한 문화정치가 창성하도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원언송성미(願言頌盛美)'는 '원컨데 우리들이 조상들의 융성한 아름다움을 칭송하게 해주고' '유이시가장(維以矢歌章)'인데 여기서 시(矢)는 베풀 시(施)자와 통한다고 합니다. 가장이라는 것은 노래문장, 즉 노래입니다. 그리고 유는 발어서로서 별뜻이 없어요. 결국 '노래를 베풀음으로써'라는 뜻이겠죠. 이렇게 하면서 시작을 고하는 것이 희문입니다. 빛나는 문화정치라는 뜻에서 희문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죠. 그러면, 영신때와 전폐 때는 무슨 곡을 하느냐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영신 때도 희문을 하고 , 전폐 때도 희문을 합니다. 따라서 종묘제례악에서 희문이, 영신 때, 전폐 때, 그리고 초헌중에 보태평 전곡을 하는 처음에서 세번이나 사용됩니다. 그래서 국악하는 사람들은 희문을 영신희문, 전폐희문, 초헌의 희문, 이렇게 세가지로 불러요. 그 세가지가 곡은 똑같되 가사가 다릅니다. 영신 때와 전폐 때에 가사가 똑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데 종묘제례악은 문묘제례악과 달리 적어도 일년에 네번을 해요. 춘하추동하고 동지때도 해요. 그러니까 더 많이는 할 수 있지만 네번보다 적게 하는 법은 없죠. 현재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일년에 한번만 지냅니다. 매년 양력으로 5월 첫번째 일요일로 정해 버렸어요. 그렇지만 일제시대에도 일년에 네번을 지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지냈죠. 그리고 지금은 제사를 오전에 지내지만, 원래 제사는 밤에 지내는 겁니다. 밤에 제사를 지내는데, 겨울이 문제가 됩니다. 왜 문제가 되냐면, 겨울 밤에 종묘 뜻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추워서 환장하겠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늘 한강이 얼정도로 겨울이 추웠어요. 보통 사람도 추워 벌벌떠는 깜깜한 밤에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이 악사들이에요. 불어야 하는데 입이 얼어붙어버려요. 그러면 요즘과 같으면 악사들이 노조를 결성해서, 어싸어싸해서 우리 이짓 못하겠다 라던가, 제삿날을 옮기자든가, 인권을 유린하지말라 어쩐다 하겠는데, 예전의 사람들은 반항을 안해요. 하라면 하는거죠. 반항할 입장에 있지도 않아죠. 그렇게 해서 깜깜한 밤중에 횃불을 켜고 하는 겁니다. 횃불은 악기로 취급하고 반드시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악사들이 이거 불려면 환장하겠단 말입니다. 특히 어디서 문제가 되느냐 영신때 문제가 되요. 이 영신 때는 구성(九成)이 되야 하는데, 처음 제사 시작하고, 신을 맞아들이는데, 무엇인가가 아홉번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똑같은 희문을 아홉번 연주해야 하는거죠. 아홉번을. 그런데 음악을 연주하다가 보면 내가 지금 일곱번을 연주하는지, 아홉번을 연주하는지 그것을 잊어버리면 큰일이죠? 그래서 곡수를 세는 악사가 따로 있어요. 그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들어가는가 하면, 피리니 이런것이 아니라, 주판을 가지고 들어가요. 중국 주판 큰것으로 지금 종묘가면 있어요. 그것을 주(籌)라고 해요. 그것도 악기로 취급합니다. 횃불도 악기고 주판도 악기인 셈이죠.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을 집주(執籌)라고 해요. 그런데 집주하는 사람이 악사들중 월급이 제일 많아요. 왜 그런가 하니, 요즘에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지위높은 사람일수록 일을 안하거든요. 따라서 제일 쉬운것은 제일 힘센 놈이 차지하죠. 남이 죽어라고 부르면 집주는 떡하니 있다가 하나만 까딱 올리면 되요. 그러고는 월급 제일 많이 달라고 손내밀어요. 지위도 높죠. 그런데 집주보다 더 높은 사람이 집박(執拍)입니다. 짝하고 치는 박이라는 악기 아시죠. 이것은 음악을 시작하라 말라 명령하는 겁니다. 그러니 연주는 안하거든요. 박은 시작할 때와 변화할 때는 한번씩 치고, 끝날 때는 세번을 칩니다. 세번 짝짝짝 치면 연주도중이건 뭐건 무조건 그쳐야 해요. 그런데 실제로 음악하는 놈은 이걸 아홉번 불려면 환장할 지경인데 반항 수는 없고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시키는대로 하느냐, 물론 시키는대로 안해요. 방법은 얼마든지 있죠.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빨리 연주하면 되요. 그러니까 이 희문을 요즘 로큰롤 연주하는 식으로 해서 후닥닥 끝내버립니다. 그러면 거기에 있는 지위높은 딴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 그냥 모르는 척 있으면서 속으로는 좋아하죠. '나도 추워죽겠는데 저놈들이 알아서 잘하는구나' 그런 이야깁니다. 그래서 궁정악으로는 있을 수 없게 빨리 연주해 버려요. 음악도 엉망이에요. 음악 좋아서 뭐해요. 입장료 팔 것도 아니고. 후닥닥 해치우고 아무도 모르는 척 입다물고 있는거죠. 물론 아무도 책에 기록하지도 않고 이런말 나처럼 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겉으로는 명령을 지킨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지킨 것은 아니죠. 이러면 인간의 심리가 조상에 대해 미안하게 됩니다. 그땐 잘못했다고 빌면 됩니다. 그래서 빌면되기 때문에 전폐 때는 희문을 한번 연주하므로 이때는 무지무지하게 느리게 연주해요. 한번만 하면 되니까 보상해 주는 겁니다. 그래서 전폐희문은 엄청나게 느리게 연주하고, 초헌 때 하는 희문은 보통 속도로 제대로 합니다. 그런데 느리게 연주하므로 전폐희문이 장엄하게 들리거든요. 따라서 지금 국립 국악원에서 종묘제례악 중에서 곡 하나만 딱 연주해라 하면 전폐희문을 합니다. 이것이 가장 장엄하죠. 그 이유가 거기 있어요.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말 듣는 것 같으면서도 안들어요. 그러면서 아무 문제없이 다 해결해요. 희문은 어쨌든 그런 곡입니다. 그림3으로 돌아가보면, 악보가 있습니다. 이것은 음계가 서양식으로 솔라도레미 입니다. 그리고 그 위의 한 옥타브 높은 솔라가 있어요. 그것은 괄호안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소리인 솔을 국악에서는 황종(黃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옥타브 높은 것을 청황종(淸黃鐘)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중국의 아악에서 음이름이 모두 12개이기 때문에 12율이라 하는데 그것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열두음 이름은 황종(黃鐘), 대려(大呂), 태주(太주), 협종(夾鐘), 고선(姑선), 중여(仲呂), 유빈(유賓), 임종(林鐘), 이측(夷측), 남여(南呂), 무역(無역), 응종(應鐘) 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주(足), 선(洗), 역(邪)은 모두 족, 세, 사로 읽지 않습니다. 음악에서는 다르게 읽어요. 이 열두개 음이 모두 의미가 있어요. 처음에 황종은 왜 황종이냐, '노란 종'이란 소리인데 노란색은 다섯 방위에서 중앙이 됩니다. 즉 기본이 된다 이것입니다. 그리고 종이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종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종자와 통하단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어떻든 그 12율 중에서 황종, 태주, 중려, 임종, 남여 그리고 청황중, 청태주 라고 하는 것을 뽑은 것입니다. 이렇게 12율 중에서 머리글자만 뽑아서 쓰는 악보번을 율자보(律字譜)라고 합니다. 이 율자보는 지금도 우리 국악에서 애용되는 악보입니다. 악보 쳐놓고는 (?) 제일 정확합니다. 그림3을 보면 보기 쉽도록 율자보가 아닌 솔라도레미로 했습니다. 이탤릭체 솔라는 낮은 솔라입니다. 제대로 한다면 '솔라라라 도도도도...' 하지 않고, '황태태태 중중중중...' 이라고 해야겠죠. 이 악보를 보면 뚜렷이 보이는 특징이 있어요.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같은 음 반복이 많다는 겁니다. 라, 도, 레 등의 똑같은 음을 왜 이렇게 많이 반복하느냐 이겁니다. 원칙적으로 음악에서 같은 음이 반복된다고 하면, 지루하게 되기 때문에 단점이 됩니다. 나쁜 겁니다. 그러나 그 나쁜 것이 때로는 동시에 좋은 특징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것이 묘한 것입니다. 사람 얼굴에 사마귀가 나면, 그것은 나쁜 것이다 해서 뽑아버리는데, 미인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사마귀가 나 있는데 뽑아도 좋으련만 안 뽑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 특징입니다. 원래 음악에서 반복하는 것은 나쁜 것이지만 그것을 나쁘다고 피하지 말고, 좋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그 중의 하나로서 반복을 살린 것이 이 희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그냥 연주하면 지루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악사들이 묘한 것을 생각해냈어요. 네번 이상 반복되는 음들은 같은 음 두개 씩을 하나로 묶어서 한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네번보다 작을 때는 그대로 하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솔라라라 도도 도도 레레레 도도 도도 도도' 이렇게 연주를 해요. 즉 '도' 두개를 묶어서 붙여서 연주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아이디어인데 재미있지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이 음 하나하나를 편종, 편경을 때려서 소리내게 하므로, 전부 그대로 바꾸어서 합니다. 그러나 사람 목소리나 피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그대로 처음대로 빼면 됩니다. 그리고 희문 뒤에 붙은 애는 아무 뜻없이, 양념처럼 들어간 것이죠. 이렇게 뜻없는 것을 노래속에 집어넣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은 매우 좋아합니다. 이런 것이 발달해서 고려가요처럼 '얄리얄리 얄라셩' 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영어로 무의미한 음절(meaningless syllable) 이라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구음(口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악보를 보면 가사 한줄 끝나고 제가 콤마를 찍었어요. 그 콤마에서 박을 한번 치는 겁니다. 하나가 끝났다 그런 소리죠. 그리고 맨 끝에서 박을 세 번치고 끝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자꾸 부르면, 시조할 때 이야기 했듯이 점점 묘하게 변합니다. 소리에 이끼가 끼고, 공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소리를 구부리기도 하고, 태우기도 하고, 추어 오리기도 하고, 떨기도 하며, 또는 크게 했다 작게 했다 하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나가면, 멜로디까지 변할 수가 있습니다. 공력이 생겨서 다른 소리가 됩니다. 한참 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음악이 변하는 것이죠. 악보에서 이탈까지 되어버린단 말입니다. 이렇게 본래의 소리에 음악적으로 맛을 들여서 내는 소리를 '시김새'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김새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그 사람이 그 음악을 어느정도 주무르나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종묘제례악 정도되면 굉장히 지루한 음악으로 알지만, 막상 대해보면 지루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재미있어요. 그래서 이 시간에 가장 지루한 것으로 아는 음악을 예로 들은 것입니다.
그럼 이만 국악에 대한 개략적 강의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