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의 길' 강연 내용
강유원
일시: 2007년 10월 14일(일), 14시-16시
장소: 서울 강남교보문고 23층 강연회장
이 책을 통해 강유원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짐작하기 어렵겠지만, 사실 난 '자기 계발'이라는 분야를 혐오한다. 책 앞날개에 붙어있는 내 약력을 보면 그간 내가 어떤 책들을 쓰고 번역해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자기 계발서는 아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망설여졌겠는가. 게다가 이런 강연회까지 연다니 '달인의 길'이 아니라 '돈버는 길'에 들어섰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을 충분히 예상했다. 그렇지만 나는 책을 번역했고 이렇게 강연회까지 열었다. 우선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나는 이 책을 읽었을 때 번역을 하고 싶었다. 옮긴이의 말에 쓴 그대로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싶었다. 번역하는 것은 내 맘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것은 내 맘이 아니다. 사실 책을 팔아서 돈을 벌자면 좀 그럴듯하고 번듯한 책을 쓴 다음 한국방송의 'TV, 책을 말하다' 같은데 출연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방법이다. 나는 몇번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거절했었다.
'자기계발'류의 책은 출간해서 꾸준히 나가는 분야가 아니다. 잘 나가면 좋지만 안나가는 책은 초판 1쇄 2,000부 찍은게 창고에서 그대로 썩어버린다. 인문학 책처럼 1년에 100부라도 꾸준히 나가는게 아니다. 인류가 2천년도 넘게 읽어온 플라톤의 대화편같은 고전은 한번 찍어놓으면 언제든 팔리지만 이런 종류는 시류를 탄다. 출판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 의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독자들도 이제는 출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면 좋은 책을 고르는데 많이 도움이 된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많이 팔아서 돈을 벌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인세 5퍼센트 받는 역자가 버는 돈이라는게 많지 않다. 그러니 이 강연회가 돈벌이의 일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그리고 돈버는 일 자체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다.
이 강연회를 연 까닭은 <<달인>>의 내용에 뭔가를 보충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달인은 실천 매뉴얼만 나와 있는 책인데, 그 앞부분에 뭔가를 내가 채워 넣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내가 armarius.net 사이트를 오픈한게 이번 10월로 5년되는데 이제 뭔가 확실한 메세지를 전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동참할 것을 권유하여 함께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 강연회를 마련했다.
그럼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겠다. 올해 2007년은 1987년 6월 항쟁 20년 되는 해라고 한다. '87년 체제'라고 불리는 것이 20년동안 진행되어 온 것이다. 여기 참석한 분들은 1987년에 무얼 했는지 한번씩 돌이켜 보자. 나는 그 해에 대학원 철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6월 항쟁때 시위 한번 안했고, 배창호 감독, 황신혜 주연의 '우리 기쁜 젊은 날'을 보고 그랬다. 한마디로 나쁜 놈이다. 내가 386이다. 그런데 그때 그따위 짓 했으니 참 나쁜 놈 아닌가. '6월 항쟁의 주역'들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한번 보자. 구글에서 '6월 항쟁의 주역'이라 검색해보면 이런저런 결과들이 나올 것이다. 많은 감회에 젖게 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지식인의 책무라는 걸 말해보고 싶다. 사실 이건 내가 별로 거론하지 않는 주제이다.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쓰면서 가끔 지나가는 말로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 주제를 정면으로 내세워 이렇게 이야기 해본 적은 없다. 말은 공허하기 마련이고 실천은 어려운 법인데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책무'같은 어마어마한 말을 쓸 수 있겠는가 하는 두려움에서 그랬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이걸 내가 꺼냈다. 그것은 내가 지식인으로서 제대로 살아왔다는 변명을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여러분들은 똑바로 살아야 한다고 훈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가 그 말을 꺼낸 목적은 나나 여러분이나 그걸 한번 되새겨 보고 함께 뭔가를 다짐해보기 위해서이다.
내가 지식인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냥 글읽기를 배운 사람이다. 신문에 칼럼쓰고 어디가서 강의하는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내가 대학에서 더이상 정규적으로 강의하지 않게 되면서 나는 고졸이상을 내 청중이자 독자로 생각해왔다. 어쨌든 지식인의 책무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있다. 나는 지식인은 '이상을 현실화 시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식인이다. 현실화시키려면 이상을 알아야 하니까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의 공부를 말한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실화'이다. 이게 어렵다. 진짜 어렵다. 나는 자기 전에 이를 닦아야 한다는 습관 하나도 현실화(실천)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내가 앞니 두 개 포함해서 왼쪽 윗니 8개가 의치인데 의사가 그랬다. 이를 잘 닦으시라고. 그런데 나는 7년이 넘도록 이 습관을 만들지 못했다. 공휴일에는 아예 이를 안닦고 지나가는 일도 있다. 그러니 '이상'을 현실화 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를 생각해보라. 한마디로 고난의 길이다.
여기서 잠깐 라인하르트 코젤렉의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하겠다. 여러분들이나 나나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빠른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살아간다. 이게 언제부터였을까 상상해보라. 아마 휴대폰이 손에 쥐어진 다음부터였을 것이다. 그 전에는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하고도 그 사람이 늦어지면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문자를 날린다. 그리고 도착했는데 그가 오지 않으면 곧바로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건다.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했을 때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이 상황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느긋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이 어느 날 갑자기 변했다. 2)그에따라 우리의 과거 경험에서는 도출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혁명이다. 3)우리의 경험공간이 확 달라졌다. 4)이제 경험에 따라 우리의 기대도 달라진다. 5)반복되는 경험공간의 확장, 그에따른 기대지평의 확장에 따라 우리의 생활습관을 포함하는 생활세계 전반이 변화하였다.
이 과정은 이른바 혁명이 일어나고 그 혁명에 의해서 달라진 경험 공간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에 정착되고 우리의 기대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지, 그에따라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진보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혁명이 단발성이어서는 안된다. 코젤렉은 칸트를 인용하여 프랑스 혁명과 같은 새로운 경험들이 축적되고, "잦은 경험을 통한 학습"을 통해야만 "더 나은 것을 향한" 지속적 "진보"를 확고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잦은 경험을 통한 학습"에 주목해야 한다. 휴대폰의 편리함을 자주 겪어보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의 혜택을 누릴 마음을 가질 수 없다. 1년에 한번이나 누린다면 그것은 성공한 혁명이 아니다.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여건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의식이 따라가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진짜 어렵다. 그것은 칸트의 말처럼 잦은 경험을 통한 학습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일상 속에서 몸을 변화시켜야 의식이 바뀌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의식과 존재는 끊임없이 서로를 배반한다.
혁명은 말 그대로 '과거와의 단절의 경험'이다. 그것은 얼마든지 일회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일상의 경험으로 끄집어 들여서, 대중들이 잦은 경험을 통한 학습을 하게 함으로써 미래의 기대의 원천으로 삼게 하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지식인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하루 이틀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87년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분명 우리에게 과거와의 단절의 경험이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거와 얼마나 단절되었는가. 우리의 생활세계는 87년 이전과 다른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경험 공간은 얼마나 많이 확장되었는가.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권력잡은 자들이 그런거 아닌가', '세상을 바꿀 수 있기나 한가. 택도 없지'와 같은 냉소를 흩뿌리면 살고 있다. 게다가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속된 말로 '맘에 쏙 드는 후보 하나 없다.' 정말 어쩌라고 하는 자포자기가 만연해있다. 난 이 상황이 바로 혁명의 일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본다. 혁명은 일상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그에따라 우리의 생활세계는 박정희 때와 마찬가지이며, 어찌보면 더 큰 냉소만 남겨 주었다. 그에따라 우리의 기대지평 또한 말할 수 없이 초라해졌다. 어쩌면 87년 당시보다 우리의 기대는 더 쭈그러 들었을 것이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사태가 한 몫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상을 향한 열정은 사라지고 먹고 사는게 최고, 남들이 어찌살건 나만 편하면 그만 이라는 생각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 오리아나 팔라치는 <<한 남자>>에서 진정한 영웅은 투옥되었을 때가 아니라 감옥에서 나왔을 때 탄생한다고 말한다. 일상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은 정말 무섭다. 우리가 견디어야 할 것도 바로 이러한 일상이다. 우리가 이걸 견뎌내면 영웅이 된다.
앞서 2002년 10월부터 5년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쭉 지켜보신 분은 알겠지만 나는 그 5년 동안, 내 입으로 말하기는 쑥쓰럽지만 제법 성실하게 사이트를 운영해왔다. 질문이 있을 경우, 알고 있는 것에는 성실한 답변을 하려했고, 책을 읽어 서평을 쓰면 업로드 했으며 쓰거나 번역한 책들의 초고도 다운받아 읽을 수 있게 하였다. 2005년 11월부터는 방송을 하거나 강의한 내용도 업로드하여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지금 녹음 파일이 200개를 넘어갔다. 사이트 운영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게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말 그대로 일상의 지겨움을 한없이 안겨준다. 그런데 나는 이걸 한다. 잘난 척하기 위해서, 베푸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이걸 왜 하는지에 대해 툭 터놓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걸 이야기 하겠다.
나는 혼자서 공부하고 재미있어 하면 그만인 사람이다. 먹고 살만큼 벌어서 읽고 싶은 책 읽고, 간혹 주변에 그것에 궁금한 사람이 있으면 몇몇과 교류하면서 그것을 나누면서 살아도 그만이다. 굳이 나서서 불편을 감수하고 내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도 된다. 간단히 말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내 공부의 목적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서 자신을 완성하는 데에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불필요할 수도 있다. 나의 정체성은 대중적인 운동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나는 '이상의 현실화'라는 말을 했고, 이상을 알아야 한다는 말도 했다. 이상을 안다는 것은 넓은 의미의 공부라고 했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일상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함께 실천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니 내가 한번 해보자, 이런 뜻에서 사이트를 운영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하는데까지 해보자고 결심했다. 이렇게 결심한데에는 한국에서 지식인이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를 살펴본 결과이다. 많은 분들이 훌륭한 일들을 해왔다. 나는 그런 분들이 모인 운동 단체에 가서 토론을 하고 발표하는 일을 잘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날마다 하는 일을 제쳐놓고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들 모두가 사실 비슷한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려면 생업에 지장이 생긴다.
나는 먹고 사는 일을 하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사이트를 운영하고 책을 써내는 일이었다.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꾸준히 나눠먹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내가 하는 그 짓을 보통 사람 누구나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의도한 바였다. 지금 한국은 인터넷 환경이 잘 되어 있다. 엠피쓰리 플레이어 구하는 것도 정말 쉽다. 열악한 상황이긴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과 엠피쓰리 파일, 이 두가지가 나의 도구인 것이다. 그래서 게시판도 최소한의 조건만 갖추었으면 누구나 어려움없이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동영상은 시간을 내서 집중해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 안한다. 어쩌다 감동을 주는 멋진 칼럼을 써서 대중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이 아니다. 나는 게시판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고 싶었다. 그래서 날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궁리하고 퍼뜨리고 싶었다. 사실 게시판 운영하는 것, 못할 짓이다. 모든 글을 다 읽어야 하고 싸움이 벌어지지나 않는지 노심초사해야 한다. 차라리 블로그 하나 달랑 깔아놓고 댓글 막고 트랙백이나 받는 것이 관리의 어려움을 줄여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잘나서가 아니라 그건 내가 의도하는 바가 아니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냥 해보자는 것이다.
지금 여기 오신 분들 중에 내가 업로드한 녹음파일을 늘 듣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가? 책을 읽지 않아도 부담없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듣다보면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지던 내용도 조금은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책을 읽을 수 있고, 책을 읽으면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사를 해본 분도 있을 것이다. 글을 읽는 힘이 강해지고 그것이 곧바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 그걸 활용해도 좋다. 다만 나는 그것을 날마다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회사 일 끝나고 피곤하면 듣다가 잠들어도 좋다. 전철에서 듣다가 놓쳐도 좋다. 3공노트 구입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요약을 해본 분도 있을 것이다. 이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늘 있어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반복해서 말했다.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내가 사악한 메세지를 녹음해서 여러분들의 귀에 담아 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틀린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대단히 훌륭한 학식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일관된 메세지를 보내려고 늘 노력한다. 그렇게 해서 공부가 일상이 되고 그 일상에서 깨인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 우리의 기대지평도 언젠가는 높아지고 넓어지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무기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의 일상을 공부로 채우자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공부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며, 그것을 쌓아놓으면 사회적으로 힘있는 대중이 된다. 굳이 '집단지성'이니 하는 말까지 꺼낼 필요도 없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스스로를 이런 경지로 이끌어야 가야 한다. 이게 내가 여러분에게 함께 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을 꺼내는게 정말 낯간지럽지만 오늘은 꼭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이 달인이라는 책 앞에 내가 끼워넣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러면 이제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남은 문제다. 이것이 달인에 담긴 내용이다. 까놓고 말하면 <<달인>>은 앞서 말했듯이 자기계발서이다. 그런데 난 이걸 번역했다. 왜 이런 미친 짓을 했을까. 온갖 추측이 난무하리라는 걸 안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이 책은 내가 그간 출간한 책들에 비하면 진짜 만만한 책이다. 쉽다는 말이다. 손에 잡기가 아무래도 편하다. 그러니 만에 하나 이 책이 지금까지 내가 출간한 책들보다 좀 많이 팔리게 되면 그 기회에 뭔가 말하고 싶어서였다.
이 책에서 사람을 분류하는 유형이 있다. 호사가 타입, 강박증 타입, 현실안주 타입. 우리는 조금씩 이 유형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달인은 어떤가. 그냥 끊임없이 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이것은 공부를 일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공부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왔는가. 이것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공부를 '뭔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것을 이루면 더이상 공부를 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뭔가'가 항상 돈되는 것, 권세를 주는 것, 편안한 것이었다. 어찌보면 공부는 신성한 것인데, 이게 속된 것의 도구가 되어버린 측면이 있다. 그것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각자 다를 것이다. 나는 81페이지에 있는 '카네기'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다. 그냥 그건 흔한 농담일 뿐이다. 연습을 강조하기 위해 내놓은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걸 읽으면서 나름대로 상징적인 뜻을 만들어 보았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는 것은 음악가들의 꿈이다. 그리고 그곳에 가려면 연습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카네기 홀이라는 건 어찌보면 너무 거창한 꿈이다. 멋진 일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냥 날마다 혼자 즐기면서 살아도 좋은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세계적인 석학이 되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공부를 해서 뭔가 대단한 것을 성취하고 남들에게 떠받들림 받아야 좋은 것인가.
사실 한국에서는 공부 그 자체를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진짜 바보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이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바보가 되어 버린다. 한국 사회의 경험공간은 현재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공부 자체를 위해 공부하는 이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지평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이게 과연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의 모습이라 생각할 수 있는가. 아닐 것이다.
내가 40대 중반이다. 이 사람들 세 명이 모이면 무슨 이야기들을 나눌까. 짐작해보면 뻔하지 않은가. 정말 대화 콘텐츠 부족이다.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공부한 것, 책읽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가. 말 그대로 공부가 일상화되어 있는가. 공부에 관한 책들을 인터넷 서점에서 한번 검색해보라.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들을 할 것이다. 철없는 어린아이가 아이비리그 갔다고 공부하는 비법을 펴낸다. 달인, 사지 않아도 좋다. 내가 쓴 책들 사서 읽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내가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 또 내가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 뿐이다. 가능하면 날마다 열심히 공부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한 것을 남들과 나눠먹자는 것이다. 나는 서평을 쓰면서 그것이 가능하다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쉽게 풀어서 강의한 노트를 업로드하고, 강의를 녹음하여 업로드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서평을 읽는 것만으로는 책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걸 풀어서 설명하는 강의가 있어야한다. 그런데 강의노트를 읽는 것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 그러면 아예 해설강의를 듣게 한다. 이것이 내가 나눠먹기를 위해 실천해온 도구와 방법이다. 언제 그것이 커다란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다. 그저 기약없이 해나갈 뿐이다. 성공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문학과 교양의 대중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약간의 고민을 했고 내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아 실천해왔을 뿐이다. 백남준과 같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도 자랑스럽지만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값싸고 고급스런 음악회를 갈 수 있는 것, 악기 연주를 배우고 싶으면 가까운 문화센터에서 훌륭한 선생에게 싼 값에 배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세계적인' 사람들을 배출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언제까지 우리는 영재 교육을 떠들면서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공부의 즐거움을 포기하게 하고 대학에 진학한 사람들도 기업이 요구하는, 몇 년 가지 않아 다 쓸모없어질 기능만을 습득하게 하는, 그리하여 대다수의 국민을 자본의 부속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체제를 용납할 것인가.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인가. 이것은 사실 심각한 숙제다. 여기서 말로 떠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리한다. 우리의 일상을 정직한 공부로써 변화시키자. 아는 것은 안다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하자. 그리고 그것을 남들과 나누자. 그렇게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 지식이 우리의 경험공간을 넓혀줄 것이다. 그렇게 넓혀진 경험공간은 또다시 우리의 기대지평을 확대시킬 것이다. 확대된 기대지평은 지식으로 쌓여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다. 공부는 단순한 지적인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플라톤적인 의미에서의 공부이다. 플라톤에서 공부(학습)는 망각된 지식을 상기하여 천상계로 되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존재론적이고 윤리적인 의미를 지닌 인간 존재의 본질적 변화이다. 그것은 '잘 사는 것'을 위한 궁극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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