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창녀촌의 노랑머리」 계수님께 징역을 오래 살다보면 출소한 지 얼마 안되어 또 들어오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또 들어와 볼낯 없어 하는 친구를 만나도 나는 그를 나무라거나 속으로라도 경멸할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만기가 되어 출소하는 친구와 악수를 나눌 때도 "이젠 범죄하지 말고 참되게 살아라"..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엿새간의 귀휴」 계수님께 어제 저녁 두 통 한꺼번에 배달된 계수님의 편지는 나의 생각을 다시 서울로 데려갑니다. 귀휴(歸休)란 돌아가 쉰다는 뜻인데도 아직 마음 편히 쉬기에는 일렀던가 봅니다. 귀휴 기간 동안 내가 해야 했던 것은 우선 엿새 동안에 지난 16년의 세월을 사는 일이었습니다. 16년 세월에 담긴 중량(..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닮는다」 아버님께 형님 오시면 말씀드릴 요량으로 하루 이틀 미루다 너무 늦었습니다만 아버님 하서와 {개자원보}(芥子園譜) 진작 받았습니다. 내일이 섣달 그믐, 새삼 어머님 환후에 생각이 미쳐 소용도 없는 걱정입니다. 노구에 중환이라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욕심에 지금쯤 털고 일어나시지나 ..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독다산(讀茶山) 유감(有感)」 아버님께 유배지의 정다산(丁茶山)을 쓴 글을 읽었습니다. 이조를 통틀어 대부분의 유배자들이 배소(配所)에서 망경대(望京臺)나 연북정(戀北亭) 따위를 지어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과 연모를 표시했음에 비하여 다산은 그런 정자를 짓지도 않았거니와 조정이 다시 자기를 불러줄 것을 기대하지도..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오는 사랑의 방법」 계수님께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불선(不善)한 사람들이 미워하는 ..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세월의 흔적이 주는 의미」 형수님께 세모의 사색이 대체로 저녁의 안온함과 더불어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는 이른바 유정(幽情)한 감회를 안겨주는 것임에 비하여, 새해의 그것은 정월달 싸늘한 추위인 듯 날카롭기가 칼끝 같습니다. 이 날선 겨울 새벽의 정신은 자신과 자신이 앞으로 겪어가야 할 일들을 냉철히 조망케 한다는 ..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가을의 사색」 형수님께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들은 추수라도 하듯이 한 해 동안 키워온 생각들을 거두어봅니다. 금년 가을도 여느 해나 다름없이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공허한 마음은 뼈만 데리고 돌아온 '바다의 노인' 같습니다. 봄, 여름, 가을, 언제 한번 온몸으로 떠맡은 일 없이 그저 앉아서 생각만 달리..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서도와 필재(筆才)」 형수님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씨란 타고나는 것이며 필재(筆才)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명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재가 있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그 재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견 빼어나긴 하되 재능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손끝..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형수님께 하얗게 언 비닐 창문이 희미하게 밝아오면, 방안의 전등불과 바깥의 새벽빛이 서로 밝음을 다투는 짤막한 시간이 있습니다. 이때는 그럴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더 어두워지는 듯한 착각을 한동안 갖게 합니다. 칠야의 어둠이 평단(平旦)의 새 빛에 물러서는 이 짧은 시간에, 저는 별이 ..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교(巧)와 고(固)」 아버님께 지난 달 28일부 하서와 오당지 잘 받았습니다. 영석이 다녀간 편에 어머님, 아버님 평안을 들었습니다만 저는 또 저 때문에 겨울을 걱정하실 어머님 걱정입니다. 보내주신 종이는 여기 것보다 값도 눅고 결도 고운 것 같습니다. 추워지기 전에 써보고 싶은 글귀를 몇 가지 적어두었습니다만 갈.. 신영복 2010.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