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겨울의 싸늘한 냉기 속에서 나는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봄을 기다린다. 천장과 벽에 얼음이 하얗게 성에져서, 내가 시선을 바꿀 때마다 반짝인다. 마치 천공(天空)의 성좌(星座) 같다. 다만 10와트 백열등 부근 반경 20센티미터의 달무리만 제외하고 온 방이 하얗게 얼어 있다. 1월 22일 3호실로 전방(.. 신영복 2010.03.24
영인본『엽서』서문, 「우리 시대의 고뇌와 양심 」 영인본『엽서』서문 20년의 옥고를 치르고 우리들 앞에 나타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의 변함없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서 출판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을 때 그의 조용하면서도 견고한 정신의 영역에 대하여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 신영복 2010.03.2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나는 걷고 싶다」 계수님께 작년 여름 비로 다 내렸기 때문인지 눈이 인색한 겨울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눈 뒤끝의 매서운 추위는 죄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데도 눈 한번 찐하게 안 오나, 젊은 친구들 기다려쌓더니 얼마 전 사흘 내리 눈 내리는 날 기어이 운동장 구석에 눈사람 하나 세웠습니다. 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신영복 2010.03.2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계수님의 하소연」 계수님께 계수님의 편지 여백에는 썼다가 부치지 않은 계수님의 '하소연'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계수님의 그 하소연이 조금도 염려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한 여유마저 느끼게 합니다. 왜냐하면 계수님의 짤막한 편지를 차근히 읽어보면 그 속에는 심야의 헝클어진 감정이 배어 있는.. 신영복 2010.03.20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최후의 의미」 계수님께 계주(繼走)의 최종 주자가 승리의 영광을 독차지할 수 없습니다. 특히 목표가 원대한 것일수록 '최후'보다는 그 과정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후'란 전 후로 격절(隔絶)된 별개의 영역으로서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과정의 '전부', 또는 어..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작은 실패」 형수님께 주역 64괘 중의 맨 마지막 괘가 소위 '미제'(未濟)괘로서 괘사(卦辭)에는 "어린 여우가 물을 거의 건넜을 때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이로운 바가 없다"(小狐洛濟 濡其尾无攸利)라 하였습니다. 지난 가을 교도소 앞 논으로 타작일 도우러 갔을 때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추수 임..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아픔의 낭비」 계수님께 3층의 빈 방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오늘 따라 세찬 바람은 끊임없이 창문을 흔듭니다. 창문은 다시 어수선한 내 마음을 흔들어, 잊어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을 어지럽게 휘저어놓습니다. 한 주일간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계수님의 친정 식구들의 후의(厚意)를 잊지 못합니다. 그것..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지혜와 용기」 계수님께 새해가 겨울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까닭은 낡은 것들이 겨울을 건너지 못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낡은 것으로부터의 결별이 새로움의 한 조건이고 보면 칼날 같은 추위가 낡은 것들을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겨울의 한복판에 정월 초하루가 자리잡고 있는 까닭을 알겠습니다. 세모에 지난 한 해 ..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장기 망태기」 형수님께 우용이, 주용이 그리고 형수님의 건강을 빕니다. 항상 엽서의 문미(文尾)에 가벼운 인사말로 적던 이 말을 오늘은 엽서의 모두(冒頭)에 경건한 기원처럼 적어보았습니다. 우체국에서 선 채로 써보내신 형수님의 편지는 제게 여러 가지 생각을 안겨주었습니다. 평소 단정하고 무척 강단져뵈던 .. 신영복 2010.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