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한 그릇의 물에 보름달을 담듯이」 계수님께 얼마 전에 2급 우량수방으로 전방하였습니다. 무기수답지 않은 자그마한 보따리 하나 메고,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열한 가족의 받은 징역이 도합 242년, 지금까지 산 햇수가 140년. 한마디로 징역을 오래 산 무기수와 장기수의 방입니다. 응달 쪽과는 내복 한 벌 차(差)..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세월의 아픈 채찍」 계수님께 기상시간 전에 옆사람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몸을 뽑아 벽 기대어 앉으면 써늘한 벽의 냉기가 나를 깨우기 시작합니다. 나에게는 이때가 하루의 가장 맑은 시간입니다. 겪은 일, 읽은 글, 만난 인정, 들은 사정……. 밤의 긴 터널 속에서 여과된 어제의 역사들이 내 생각의 서가(書架)에 가지런..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동굴의 우상」 아버님께 어머님께서 걱정하시는 겨울이 또 다가옵니다. 내일이 소설(小雪). 문풍지도 해 붙이고 통기구(通氣口)도 바르고, 겨울 내의에 타월을 목수건하고 방한 털신까지 신고 나서는 이곳 수인들의 차림을 보면, 비계살이 얇아 과연 겨울이 추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겨울이 더 좋습니다. ..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아름다운 여자」 동생에게 '미'(美) 자는 '양'(羊) '대'(大)의 회의(會意)로서 양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큼직한 양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그 고기를 먹고 그 털을 입는 양은 당시의 물질적 생활의 기본이었으며, 양이 커서 생활이 풍족해질 때의 그 푼푼한 마음이 곧 미였고 아름다움이었..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염려보다 이해를」 아버님께 아버님께서 그처럼 걱정해주시던 겨울도 다하고 우수 경칩을 지나 이제는 '엽서 한 장에 넘칠 만큼' 춘색(春色)이 짙어졌습니다. 오늘은 이 글을 쓰기도 하려니와 그간 모아두었던 아버님의 편지를 한장 한장 되읽어보았습니다. 오늘은 아버님의 편지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아..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형님의 결혼」 형님께 형님의 결혼은 저에게도 무척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다만 한 장의 엽서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한 장의 엽서를 앞에 놓고 허용된 여백에 비해서 너무나 많은 생각에 잠시 아픈 마음이 됩니다. 이 아픔은 제가 처하고 있는 상황의 표출인 동시에 또 제가..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객관적 달성보다 주관적 지향을」 동생에게 오랜만에 띄운다. 그동안 편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입을 열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지금도 마찬가지다. 별로 즐거운 이야기가 없기도 하려니와 설령 즐거운 것이라 하더라도 네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 내가 네게 해두고 싶은 말은 나를 '.. 신영복 2010.03.1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단상메모」 독서는 타인의 사고를 반복함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생각거리를 얻는다는 데에 보다 참된 의의가 있다. 세상이란 관조(觀照)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퇴화한 집오리의 한유(閑遊)보다는 무익조(無翼鳥)의 비상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훨씬 훌륭한 자세이다. 인간의 적응력, 그것은 행복의 요.. 신영복 2010.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