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청삼청년이 술잔을 높이 들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지금 우리 잔을 맞대고 석별의 정을 나누자.
벚나무 연붉은 꽃잎은 밤새 내린 비에 지천으로 떨어지고
내일 일은 알 수가 없다.
길 떠나는 친구여, 그대 먼 변방으로 가면 그곳에는
다시 술잔을 나눌 사람 없고
다만 잔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만이 변함없으니..."
석별의 노래 소리가 밤하늘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듣고 있던 모두의 마음에 이별의 아쉬움이 커지고 있었다.
그때 가까이 앉아 있던 교관 중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나이가 가장 들어 보이는 한 사람이 역시 일어서더니 수련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군들 모두의 수료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자네들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며 본 교관이 한 곡 하겠네"
모두가 박수를 쳤고 교관이 등 뒤에 메고 있던 단창을 빼어 들고는 연회장 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넉자 길이의 창 끝에 달려 있는 붉고 노란 수실을 밤바람에 휘날리며 노래와 동시에 창으로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본래 창 끝에 달린 수실은 찔린 상대의 피가 자기에게 튀지 않게 달려 있는 것인데 지금은 타오르는 모닥불의 옅은 붉은 빛과 조화되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초楚나라의 장수였고 그대는 한漢나라의 장군이었다.
바닷가의 모래로 각자의 성을 쌓고 둘이는 죽마竹馬를 타고 백병전을 벌였고
바닷가에 붉은 황혼이 찾아올 때까지 조약돌과 나뭇가지를 던지며 공성전攻城戰을 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대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났고
저 세상에는 죽마를 만들 대나무도 없으니
내가 그대 곁으로 갈 때에는 짚고 있는 대지팡이를 지니고 가리라..."
노래 소리는 계속 차례차례 이어져 갔다.
밤하늘 별들도 은하의 깊은 계고에서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고, 밤바람은 벚나무 나뭇가지를 흔들며 그리움의 비파를 다시 타고 있었다.
그 때 술에 취해서 탁자위에 기대어 졸고 있던 악소평이 어느새 깨어나서는 옆에서 장검을 하나 가져왔다.
그녀가 의아해 하는 남지상과 강신택 두 사람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희 두 친구와의 소중한 만남을 기념하는 뜻으로 내가 한 곡 하마"
그리고 그녀가 장내에 서서는 한 손으로 검결을 짚어가며 느리게 검무를 시작했다.
마치 달빛아래 천녀가 검무를 추는 듯 우아한 가운데 운치가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취한 와중에도 맑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인 나는 어릴 적부터 조신토록 배웠다.
남달리 큰 발을 작은 버선에 억지로 맞추었고 가슴에는 솜을 넣어 도톰하게 보이게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단풍이 피를 붉게 머금던 태행산의 겁화 이후
나는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슴을 천으로 동여매고
복수의 길로 나섰다.
지금 여자인 나는 죽고 없으나 문득 그가 달아 주었던
귓밥의 귀고리의 흔적이 밤바람에 아프게 느껴지니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쩔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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