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그 당시 짧은 늦겨울의 어느 하루, 시간은 빨리 흘러
이제 온기를 잃은 태양이 서편으로 기울어 가는 스산한 저녁 무렵이었다.
자명검 진명도가 평소 자주 들르던 길 건너 고화점에서
한 목판에 조각된 그림을 손에 든 채 보고 있었다.
목판은 쟁반만큼의 둥근 나무판에 그림이 조각되어 있되
그림의 내용이 놀랍게도 흔한 산수화도 아니고 아수라 지옥도였다.
특히 지옥도가 그가 익히 알고 있던 죽은 뒤의 8개의 지옥을
묘사하는 팔열지옥도가 아니고 현세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일들을 생생하게 조각한 것이었다.
인간의 목에 칼이 참수되는 장면, 밧줄에 목을 매달리는 장면, 고문하는 장면,
연약한 여인과 아이를 잔혹하게 강간하고 학살하는 장면
그리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참혹한 장면이
실제와 같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감이 들게 했다.
게다가 조각의 한 귀퉁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글씨가 써져 있었다.
'하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왜 하늘은 지켜보고만 있을 뿐인가?
무소부지의 절대권능과 절대선인 하늘은 왜 이 땅 위의
불의와 애통함을 바로잡지 않고 단지 보고만 있는 것인가?
그럴려면 왜 하늘은 처음부터 존재하며 왜 당초에 피조물을 만들었던가?
생각할수록 하늘이 원망스러우며 마음은 얼음과 같이 차디차졌다.
…
진명도가 조각을 살펴보니 새로 여겨지는 물체가 한 청년의 어깨 위에서 막 날아오르고 있었다.
자신은 처음 박쥐로 생각한 새였다.
유심히 보니 둥근 눈을 부릅뜬 것이 올빼미가 분명했다.
청년은 목불인견의 잔혹한 혈겁 앞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두손으로 가리고 피가 흥건한 지면에 엎드려 슬프게 오열하고 있었다.
무현진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청년 어깨 위의 올빼미는 낮에는 움직이지 않지요. 사물이 잠든, 모든 고통스럽고 번잡한 생각까지 잠든 밤에 멀리 날아오르지요. 마찬가지로 고뇌가 단지 보이는 것만으러써 의미를 갖는다면 어깨에서 올빼미가 날아오를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참된 고뇌란 자아에 대한 각성이요 삶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지요. 고뇌는 정신을 심화시키고 생의 환희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지요. 우리는 고뇌를 통해서 환희에 도달해야 하고 고뇌를 통해서 배우고 고뇌를 통해서 환희에 이를 때 고뇌는 인생에 대해서 긍정적 의의와 적극적 가치를 지니게 되지요."
진명도 역시 총명하고 박학다식한지라
무현진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듣고 있었다.
그의 얼굴 역시 무현진인을 따라 진지해지고 있었다.
"현세고뇌도의 마지막 주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죽음보다도 더한 잔혹한 회상과 체험이다.
살아 있다는 자체가 정말 잔혹한 운명에 대한 복수와 고뇌의 저항이다.'"
무현진인의 말이 갑자기 진명도에게 천둥소리와 같이 다가왔다.
…
'하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너를 보낸 것이다!'
그 자신이 하늘을 탓하고 원망했던 그런 열정으로
눈앞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다하라는 말인가?
잔혹한 현세의 참상 뒤에 숨은 하늘의 숭고한 듯이 정녕 또 따로 있다는 말인가?
그 때의 자명검 진명도는 그 말에 감동을 받아 천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
천심!
그가 이제 천심과 아울러 인간의 도리 또한 막연하게나마 알 듯했다.
진정한 의로움이 무엇인지를, 복수의 타오른 감정을 넘어서
인간이 지녀야 할 진정한 도리를 알 것 같았다.
어느새 남지상은 이곳에서 과거의 자책하고 고민하는 젊은이에서
사유하고 사려가 있는 진정한 무인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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