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메모/공산만강 中

151 바다에 내리는 비

karmaflowing 2008. 7. 11. 12:23

그 때 금의인이 장평을 향해 낭랑한 어조로 물었다.

 

"너는 왜 번민하고 있는냐?"

 

장평이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사형의 목숨이 내일 해가 지면 세상을 떠난다 하기에

마음이 찢어지며 고통스러울 정도로 슬픕니다."

 

금의인이 침상 위의 황국주를 돌아보고는 장평을 향해 말했다.

 

"그는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한다.

그의 몸에 네가 아는 슬픔이 남아 있는가?

그의 몸은 단지 먼지로 돌아갈 뼈와 살로 만들어진 육신에 불과하고

슬픔은 있지 않다.

그렇다면 슬픔은 네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네 슬픔은 네가 자연에 온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금의인이 그리고 갑자기 노래를 읊었다.

 

"일월서의 세불아연 日月逝矣 歲不我延

오호노의 시수지건 嗚呼老矣 是誰之愆

 

세월은 흐르나니, 날 위해 멈추지 않나니,

아! 늙었도다.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가?"

 

금의인이 노래를 멈추더니 장평에게 다시 물었다.

 

"인간이 늙고 죽는 것이 과연 무엇 때문이며

누구의 허물 때문인가?"

 

'과연 사람의 생로병사가 무엇 때문이며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장평이 생각할수록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되자

금의인이 또 다른 문구를 읊조렸다.

 

"설니홍조雪泥鴻爪라!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은

눈이 녹으면 없어지니 인생의 자취가 눈 녹듯이 사라져 무상하도다!"

 

듣고 있던 장평이 사색 끝에 그의 의지를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구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금의인의 두 눈에 잠시 마주보기조차 어려운 신광이 어리더니

침상 위의 국주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장평을 향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금의인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나를 알 것이다. 나를 이전에 만나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장평이 커다란 검을, 검과 한 몸으로 겹쳐 있는 금의인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무의식은 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무상검! 먼 여행을 떠난 손님! 당신은 검이며 검은 당신 자체입니다."

 

"그렇다. 내가 무상검이니 너는 나를 배워라!

항상 정결하며 노력하라.

손님은 언제 올지 모르니 신기독야愼其獨也리.

혼자 있어도 항상 경계하고 깨어 있으라!

향후 거짓을 말하는 자가 너를 속이되

인생은 슬픔만이 있다 할 것이나

인생의 바다에는 본래 슬픔의 비가 내리고 바다에 닿으면 흔적이 없으니

슬픔 역시 무상의 바다에서 소멸하리라.

향후 거짓을 일삼는 자가 너를 속이되

사랑도 식으리라 말하리라.

그러나 진실된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견뎌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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