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과거로 흘러 작년 여름 어느 더운 날의 공산으로 돌아간다.
그 날 사부가 구해온 한 자 크기의 만년한철을 보고는
장평이 신기해했다.
남해 고도의 심해에서 생산되는 만년한철은
그가 아는 어느 금속보다 차가우며 굳강했고
그 무거움은 흑오석을 압도했다.
사부가 신기해 하는 장평에게 물었다.
"장평아, 이 만년한철을 부술 수 있겠느냐?"
장평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대답했다.
"제자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만년한철을 부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 때 사부가 무상검에 대해 처음으로 말했다.
"본문의 무상검은 만년한철을 능히 부순다!"
그리고 사부가 창밖 죽림 뒤로 높이 솟아 있는 먼 바위 암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만년한철 뿐 아니라
저 암벽마저 쉽게 부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장평이 천년 세월을 견뎌온 바위 암벽을 보았다.
태양에 희게 빛나는 절벽을 따라 솔개가 높이 날고 있었고
암벽 푸른 송림에는 원숭이들의 애절한 소리가 슬피 들렸다.
장평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제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무엇이 있어 만년한철과 천년암벽을 진흙같이 쉽게 부술 수 있습니까?"
"그 존재는 물질이 아니다.
시간이다.
시간은 생명의 자비로운 창조자이면서도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정복자이며 파괴자이다.
시간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것은 없다.
만년한철은 녹이 슬어 가루가 되고,
저 암벽 역시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 먼지로 흩어져
어쩜 푸른 바다가 들어서 있을 것이다.
원숭이 울음 대신 물새들의 울음소리가 구슬플 것이다."
장평이 그 말을 이해했다.
시간 앞에 무엇이 영원할 수 있는가!
"시간을 검에 넣은 것, 그것이 본문의 무상검이다!"
그리고 무상검의 검결을 일러주며 어려운 설명을 했다.
"네가 무상검결을 아무리 열심히 수련해도 그 경지에 바로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무상검은 유한한 인간이 알려고 해서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네 마음이 정심하고 세상 이치를 꿰뚫을 정도로 지혜로워지면
무상검이 어느 날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네 안에 들어와 상주할 것이다.
무상검은 마치 방랑벽이 있는 귀한 손님 같아
마음대로 바깥을 나돌아 다니다가 어느날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네 안에 들어와 안주할 것이다."
지금 장평이 신녀지검으로 부지불식간에 무상검을 펼치는 순간이
우주에 단 하나의 검만이 존재했다.
백승마창이 거대한 검의 형상을 한 찬란한 광휘가
찰나적으로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피할 수도 없었고 더욱이 너무나 기이하고 안온하여
피할 의지도 일어나지 않게 했다.
광휘는 갑자기 명멸했고 빛의 파편은 신기루 같이 주위를 둘러쌌다.
…
백승마창의 신형이 조각조각으로 흩어지는 순간
장평이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펼친 검식이 눈앞에 선연했다.
"무상검!..."
그가 사람을, 그것도 백승마창을 눈앞에서 직접 죽인 충격과 함께
꿈에도 잊지 못할 무상검의 현신에 더욱 놀라 신음했다.
그러나 그가 무상검의 검식을 똑똑히 기억해도
지금 다시 펼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의지대로 다시 펼치게 되기까지는 몇 년 이후, 아니 몇 십년 이후가 될 수 있었다.
장평의 머릿 속에 사부의 음성이 생시인양 선명하게 들렸다.
"너는 그 귀한 손님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인고의 사계四季가 끊임없이 지나갈 것이다.
너는 악을 보고 더러움을 만지고
배덕과 도덕이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지내는 것을 볼 것이다.
선한 약자의 증오가 모여 강자를 이기나
다시 커다란 죄악으로 변하는 모순을 실감할 것이다.
장평아, 그렇게 사계가 끊임없이 흘러갈 것이고,
너의 손님에 대한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손님은 오지 않을 것이다.
허나 가끔은 네가 아는 가운데나 혹은 모르고 있더라도
손님이 네 집에 들를 것이다.
그러나 집이 추하고 더러우면 떠나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항상 정결하게 비워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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