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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 <분수에서 나오는 것은 물, 혈관에서 나오는 것은 피>

karmaflowing 2011. 9. 12. 20:41

<분수에서 나오는 것은 물, 혈관에서 나오는 것은 피>

 

당나라 때 사람들은, 가난한 선비일수록 부유해 보이는 시를 지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금이니 은이니 비단이니 하는 단어

를 동원하며 자기는 호화롭다고 여기지만, 실상 자신의 초라함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을 간파하였다. 진짜 부유한 정경을 묘사할 줄 아는 사람은 <피리소리 뜨락에 감돌고 등불은 다락 밑을 비치네>(白居易의 <연산>) 식으로 하지, 그런 단어들은 전혀 쓰지 않는 법이다. <타도하라 타도하라> <죽여라 죽여라> 하는 말들은 듣기에는 용감한 것 같지만, 이는 혼자서 북을 두드리는 것에 불과하다. 싸움터에서 울리는 북소리도 적군이 앞에 없고 뒤에 아군이 없다면 혼자서 치는 북소리에 불과하다.

혁명문학의 근본 문제는 작가가 한 사람의 <혁명가>이냐 아니냐에 있다. 작가가 혁명가라면 어떤 사건을 쓰든, 어떤 소재를 사용하

든 모두 혁명문학이다. 분수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물이요, 혈관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피다. 구호만 요란하고 속이 텅 빈 작품으로는 눈 먼 장님이나 속일 수 있을 뿐이다.

혁명가는 아주 희귀한 법이다. 러시아의 10월 혁명 당시 많은 문인들이 혁명을 위해 힘을 바치고자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이라

는 이름의 광풍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끝내 알지 못했다. 특징적인 예가 시인 예쎄닌의 자살이며, 소설가 쏘볼리가 최후로 내뱉었던 한 마디, <못 살겠다!> 이다.

혁명시대에는 <못 살겠다!>고 소리높혀 외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혁명문학을 할 수 있다.

예쎄닌과 쏘볼리는 끝내 혁명문학가로 되지 못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러시아가 실제로 혁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문학가들

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이는 곳에서는 기실 아무런 혁명도 일어나지 않는 게 다반사이다. (<혁명문학> 중에서,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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