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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 <문학과 땀>

karmaflowing 2011. 9. 13. 00:28

<문학과 땀>

 

상해의 한 교수는 문학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다. 문학은 반드시 영구불변의 인성(人性)을 그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나 다른 몇몇 작가들은 영구불변의 인성을 썼기 때문에 작품이 지금까지 전해지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작품은 모두 소멸되고 말았다.

<말을 듣기 전에는 그래도 알만 하더니 들으면 들을수록 오히려 아리송해진다>더니, 이거야말로 그짝이다. 영국의 많은 옛 글들이

전해 내려오지 않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소실된 원인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한 바다. 그런데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게 있다. 이미 소실된 그 작품들을 오늘날의 그 교수가 어떻게 볼 수 있었으며, 그들 작품에 영구불변의 인성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전해지기만 하면 좋은 문학이요, 소실된 것은 나쁜 문학이다. 천하를 빼앗으면 왕이고, 빼앗지 못하면 역적이다. 중국인의 이런 역사

관이 문학에까지 그대로 연장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성이란 과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일까?

유인원, 유원인, 원시인, 고대인, 현대인, 미래인……, 이렇게 생물이 진화하는 것이라면 인성이라고 영구불변일 리 없다. 우리는 유인원은 차치하고 원시인의 인간성도 짐작하기 힘들 것이며, 미래인도 우리의 성미를 짐작하기 어려우리라. 영구불변의 인성을 그린

다는 것은 사실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땀을 예로 들어 보자. 사람이 땀을 흘리는 것은 옛날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장래에도 그러할 것이기에 비교적 영구불변의 인

성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버들가지 같은 몸매의 아리따운 여인의 땀은 향기로울 것이나, 소처럼 우둔한 노동자가 흐리는 땀은 역겨우리라. 세상에 길이길이 남을 작품을 쓰고, 세상에 길이길이 남을 문학가가 되려면 향기로운 땀을 묘사해야 하는가, 역겨운 땀을 묘사해야 하는가? 작가가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장래의 문학사에서 그의 지위는 그야말로 수레바퀴 앞의 달걀이 될 것이다.

영국의 소설도 전에는 태반이 마님과 아씨들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향기로운 땀냄새가 많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다

가 19세기 후반,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받아 역겨운 땀냄새가 풍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 어느 것이 수명이 더 길지, 아직은 미지수다.

중국에서는 도사의 도론(道論)이든 비평가의 문학론이든, 모두 사람들의 모골이 송연하게 만들기에 나오려던 땀도 들어가 버린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영구불변의 인성일지도 모르겠다.

(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