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노인은 은퇴하면 마치 백거이의 시마냥, 푸른강변과 살구나무 숲이 그곳이 내려다보이는 창문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함께 늙어가는 술독을 벗삼아 지내고 싶다 했다.
그러나 살구나무 꽃은 년년세세 변함없이 올 봄에도 피었으나 사람은 똑같지 않아 조노인을 포함한 백화장원의 죽은 이들은 가고 없었다.
백화장원에서 조노인의 친한 말동무이며 물자를 관리하는 진씨 노인이 조노인이 읊은 백거이의 노래를 불렀다.
"고향은 아득하고 벗들 하나 둘씩 떠나가니, 무상(無常)은 휘장을 반쯤 걷은 전각문에 비스듬히 기대어 함께 늙어가는 술독을 바라보게 하는구나!"
노래 속에 지기를 잃은 비감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밤이 없었다면 인간은 우주를 발견할 수 없었듯이 이 싸움과 죽은 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백화장원은 쇠퇴의 숙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과 같은 영광이 없었을 것이다.
연회가 파하는 저녁무렵이었다.
푸른 달은 서편하늘 구름 너머 홀로 슬퍼하고 있었고 등불은 환하고 봄은 깊어 앵화는 피어 만발했다.
젊은 날의 그리움이 유하강의 물결 따라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한 덩어리가 되어 물결에 흘러가고 있었다.
이정이 강가에 홀로 와서는 악현상을 기억했다.
강은 모든 사람들을 회귀시킨다.
죽었던 그리운 사람들이 되살아나서 물에서 걸어 나와 반가이 맞는 곳이었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의미 있어 보일 때, 어린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이 커다란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강으로 돌아와서는 죽었던 자들의 그리운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는 먼 옛날 먼저 죽은 보고 싶은 이들이 웃으며 그의 이름을 부르며 곁에 다가와 두 손을 잡아 준다.
혼자 남아 세파를 꿋꿋이 이겨온 그를 오히려 위로해 주고 눈물을 씻어주는 것이다.
이정이 강물을 보며 악현상을 그리워 했다.
"악소저, 그대는 정녕 죽은 것이오. 오늘 따라 정말 보고 싶구려"
그가 품에서 가져온 술병과 술잔을 꺼내더니 술을 술잔에 한 잔 가득 따라 부었다.
그가 하늘의 달을 그녀의 얼굴인 양 쳐다보며 말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우리 두 사람은 마음 속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겼으나 남들처럼 주루에 한가롭게 앉아 술 한잔 같이 하지 못했구려. 오늘 죽은 조노인의 뜻에 따라 새로 세운 주루를 대하니 감회가 새롭구려. 그대에게 한 잔 술을 따루어 주니 부디 저승에서는 더 이상 불행하지 말고 다만 행복하길 바라오."
죽은 악현상을 못 잊어 하는 이정의 쓸쓸한 그림자가 강에 걸렸다.
이정이 강물에 술잔을 비웠다.
강의 한자락이 흐르지 못하고 그리움의 파문을 만들며 맴돌다가 고적한 그림자를 비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는 현세고뇌도가 의미하는 세월이 은과 주나라의 아득한 세월로부터 시작하여 꼬박 천 년이 되는 해였다.
그 해 무더위가 수그러 지는 늦여름 어느 저녁 무렵이었다.
절강성 청사호변 기슭에 한 남의청년이 보였다.
청사호는 1차 정사대전이 벌어진 패원고원에서 발원되는 많은 호수 중 하나였다.
늦여름의 안개꽃이 호수 주변에 그리움인 양 만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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