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메모/느리게 흐르는 강 中

107 그리움이 스쳐지나는 언덕

karmaflowing 2011. 8. 7. 16:19

호수에 붙잡을 수 없는 노을이 끝없이 지고 있었다.

시선을 창밖에 하염없이 보내고 있는 남의 청년의 두 눈 속에도 노을이 같이 지고 있는 듯 했다.

노을이 지는 날은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누구와도 나누고 싶어하고, 그래서인지 의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손님들이 찻잔이 식은 뒤에도 늦게까지 담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중략)...

 

남의청년이 주위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이더니 이내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창문 멀리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강이 보였고 강가 키가 높은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텅빈 저녁하늘을 날아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새들을 따라 날아 멀리 자신이 내려온 언덕을 향했다.

그곳에 그가 그리워하는 이의 모습이 항상 서 있는 듯 했다.

그가 오늘 해당화를 늦여름의 그리움이 스쳐져 지나가는 안개꽃 언덕에 심은 것이다.

십여년 전 그가 알던 여인은 언덕 떡갈나무 아래 앉아 별이 내려온 듯이 지천으로 피어난 안개꽃을 보며 말했다.

 

"안개꽃의 꽃말은 죽음이고 덧없음이고 부질없음이죠. 사랑과 우정이면 더욱 그러하죠"

 

그때 그가 용기있게 말했다.

 

"안개꽃만으로는 죽음을 뜻하나 붉은 해당화가 같이 있으면 죽도록 사랑한다의 뜻이니 언젠가 이곳에 돌아와 소저를 위해 해당화를 심겠소"

 

그리고 오늘 그가 그리움이 스쳐 지나가는 안개꽃 언덕에 홀로 찾아와 해당화 무리를 심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꽃을 심고 나니 마음 속 그리움이 없어지지 않고 쌓이면서 더욱 커지기만 했다.

그렇게 마음이 울적해져 찾아온 다루에 앉아서 마시는 철관음차는 당연히 그 맛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