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메모/공산만강 中

3 우리 사랑의 삶이 죽음보다 짧더라도

karmaflowing 2011. 9. 9. 23:47

그때 떠드는 두 동생의 말과 불평없이 대답해주는 장평의 이야기를 곁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그녀가 이번에는 직접 조심스레 장평에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혹시 공산의 두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과거 그녀가 그의 부친에게 물었으나 그 대답이 궁색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지금까지 계속된 것이다.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에 긴장했던 기분이 저절로 개운해진 장평이 다행히 어려운 질문이 아니기에 시원스레 대답했다.

 

"공산은 모든 것을 나누어 주지요. 그리고 그 준 만큼이나 비어 있지요. 그래서 산은 항상 비어 있습니다."

 

공산의 의미가 불교나 도교에서 말하는 집착하지 않는 것만으로 지레 짐작했던 가족들이 모두 놀랐다.

 

'준 만큼이나 비어 있다! 주었기에 비어 있다!'

 

그녀가 생각해도 공산의 현기가 엿보이는 듯 했다.

어쩜 눈 앞의 이 사람은 그러한 신비문파의 전인이기에 다른 뛰어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만난 자리에서 실례되게 많은 것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때 동생 진명이 대신 알아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장평 소숙, 공산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비문파라면 무공실력 또한 범인의 경지를 넘어 보통이 아니겠네요?"

 

장평이 진명의 기대어린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마찬가지의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옆 자리의 황유정을 의식하고 있었다.

 

장평이 사부가 생전에 해준 말에 의해 사형인 진천권 황 대녕의 공부 정도를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세속에서의 숙명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인연 때문에 사부는 황대녕을 젊어서 무기명제자로 거두어 들였으나, 그 타고난 자질이 공산의 진재절학을 익히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잘못 나무를 돌보는 사람의 키를 키우려는 과욕은 자라나는 어린 나무의 허리를 휘게하고 여름 태풍에 옅은 뿌리를 뽑히게 하는 법이다.

그래서 사부는 황대녕에게 본산의 진재절학이 아니나 세상에서 나름대로 행도할 수 있는 한 심법만을 가르쳤다.

장평이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며 진명의 물음에 대답했다.

 

"내 사문은 무공보다 마음공부를 주로 한단다. 그래서 무공은 사실 내 몸 하나 운신할 정도로 미천할 뿐이다."

 

나무가 오래되면 높은데 있는 가지부터 마르고 사람의 마음은 들판에 번지는 불길 같아 한번 오만해지면 다시 겸손해지기 어렵기에 장평이 처음부터 자신의 실력을 낮추었다.

물론 옆자리에서 은연중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소녀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그 나이 또래의 젊은이에게 있어서 결코 쉽지 않았다.

장평의 대답에 역시나 조금은 주위의 듣는 모두가 실망한듯 했다.

 

"그렇군요"

 

진명의 수긍하는 말처럼 그들이 내심 마음속으로는 아쉬워도 장평이 한말을 또한 믿었다.

명망 있는 대문파의 무관들과 뛰어난 영웅들이 경쟁적으로 한데 몰려 있고 그 성세가 극에 달한 강남무림과 달리 먼 서쪽 호남성의 한 이름없는 외지문파 출신의 장평이었다.

설혹 겸손한 성품에 무공을 감추고 있어 혹 무공이 뛰어나더라도 그 나이 또래에서 조금 괜찮다는 것이지 어떤 무공의 궁극적 끝을 바라보는 절대경지인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소설 메모 > 공산만강 中'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나이  (0) 2011.09.11
90 인생의 바다에 내리는 비  (0) 2010.10.11
154 매화가지 그림자  (0) 2008.08.05
151 바다에 내리는 비  (0) 2008.07.11
136 돌아오지 않는 손님  (0) 2008.07.10